[윤주현의 디자인 싱킹] 책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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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길이 있다 하여,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고전을 보며 삶의 혜안을 찾는다. 그런데 미국 도서관에서 헤밍웨이, 도스토옙스키 등 위대한 작가의 고전을 서가에서 빼서 폐기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사서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봤더니 학생들이 어렵고 심각한 고전 대신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에 선정된 다소 가볍고 인기 있는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이었다. ‘궁금할 때는 찾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768년 발간돼 미국 중산층의 서재를 장식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시디롬 버전 출시와 함께 백과사전의 고전이 가정의 서재에서 아쉽게도 사라지고 급기야 2012년 종이판 출판이 중단됐다. 이렇듯 100년 뒤 이러다 책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새로운 대안을 찾게 한다.
첫 번째 예다. 노르웨이 정부는 ‘퓨처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2014년부터 미래도서관숲에 가문비나무 1000그루를 심었고 100년 뒤 나무가 크면 베어서 종이를 만들고 그 종이로 책을 펴낸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걸 위해서 1년마다 작가를 한 명씩 골라서 글을 쓰게 한다. 그 원고를 그 숲에 있는 뉴다이크만 도서관에 타임캡슐처럼 묻어뒀다가 100년이 되는 어느 해 파낸 뒤 세상에 공개하려는 계획이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한강 작가가 다섯 번째로 2019년에 선정됐고 2114년 소설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불안한 현실 속에 멀리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긴 호흡의 100년 대계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예다. 원로 교수님들의 연구실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필자는 그분들이 은퇴할 때가 되면 평소 그렇게 아끼던 책들도 갈 곳을 잃어 버려지는 것을 목격하며 안타까웠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으로 ‘디자이너의 서재’라는 캠페인으로 은퇴할 시기가 다가온 원로 선생님들을 찾아가 책을 기부하도록 하고 개인별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연구실 책꽂이에 잔뜩 쌓인 책들 중 버려지는 1순위가 프로그래밍 관련 기술잡지 등의 테크니컬 가이드다. 전자제품 매뉴얼도 읽어 숙지하지 않고 그냥 버려지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전자기업과 ‘간직하고 싶은 매뉴얼’이라는 코드명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캐릭터를 부여해서 어려운 부분을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해 친근감과 재미를 주고, 버전이 바뀌어도 연속성 있게 보이는 시리즈감을 주는 디자인시스템을 적용했는데 그것이 관심과 애착을 일으켰다. 이 사용자친화 디자인 덕에 매뉴얼 사용법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돼 그간 AS접수 전화가 많아 힘들었던 콜센터 직원들의 노고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기술 발전에 따라, 트렌드에 따라 외면받는 상황에서도 여러 방면의 창의적인 디자인사고가 버려질 수밖에 없는 종이책의 운명을 100년 후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을까? 앞서 열거한 책과 라이브러리와 책에 관한 프로젝트 예시들은 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만들고, 이 덕분에 후대를 위해 희귀한 자료를 소장할 수 있게 됐다.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했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공헌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첫 번째 예다. 노르웨이 정부는 ‘퓨처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2014년부터 미래도서관숲에 가문비나무 1000그루를 심었고 100년 뒤 나무가 크면 베어서 종이를 만들고 그 종이로 책을 펴낸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걸 위해서 1년마다 작가를 한 명씩 골라서 글을 쓰게 한다. 그 원고를 그 숲에 있는 뉴다이크만 도서관에 타임캡슐처럼 묻어뒀다가 100년이 되는 어느 해 파낸 뒤 세상에 공개하려는 계획이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한강 작가가 다섯 번째로 2019년에 선정됐고 2114년 소설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불안한 현실 속에 멀리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긴 호흡의 100년 대계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예다. 원로 교수님들의 연구실은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필자는 그분들이 은퇴할 때가 되면 평소 그렇게 아끼던 책들도 갈 곳을 잃어 버려지는 것을 목격하며 안타까웠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으로 ‘디자이너의 서재’라는 캠페인으로 은퇴할 시기가 다가온 원로 선생님들을 찾아가 책을 기부하도록 하고 개인별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발상의 전환이 생명력 부여
디자이너의 서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 번째 예로 들 ‘한국판 퓨처라이브러리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서비스디자이너라 칭하고픈 일러스트레이터 강우현 대표가 제주도 탐나라공화국 안에 전국의 헌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 헌책방이 그곳을 찾게 되는 이유가 됐는데 입장료가 헌책 5권 아니면 3만원이라 한다. 책을 읽는 도서관이 아니라 미래에 종이책이 뭔지 모를 세대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책을 전시해 책이 뭔지를 알려주는 곳으로 의도했다고 한다.연구실 책꽂이에 잔뜩 쌓인 책들 중 버려지는 1순위가 프로그래밍 관련 기술잡지 등의 테크니컬 가이드다. 전자제품 매뉴얼도 읽어 숙지하지 않고 그냥 버려지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한 전자기업과 ‘간직하고 싶은 매뉴얼’이라는 코드명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캐릭터를 부여해서 어려운 부분을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해 친근감과 재미를 주고, 버전이 바뀌어도 연속성 있게 보이는 시리즈감을 주는 디자인시스템을 적용했는데 그것이 관심과 애착을 일으켰다. 이 사용자친화 디자인 덕에 매뉴얼 사용법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돼 그간 AS접수 전화가 많아 힘들었던 콜센터 직원들의 노고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창의적인 디자인사고로 혁신
이렇듯 잡지는 시간을 타는 매체다. 잡지는 항상 최신 정보를 소개해야 하는 유행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잡지는 다음 호가 발행되면 이전 호는 빠르게 잊힌다. 하지만 모노클이라는 잡지는 다르다. 글로벌 트렌드 매거진 모노클은 잡지 특유의 일시성을 넘어 계속해서 간직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 지난 호 가격을 더 지불하기도 한다. 디자인 트렌드 잡지 월페이퍼 창립자이자 모노클 창시자인 타일러 브릴레는 “남들과 반대로 하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2007년 잡지사들이 줄도산할 때 홀로 판매부수와 매출을 늘린 것은 바로 이 전략 덕분이다.시대에 따라, 기술 발전에 따라, 트렌드에 따라 외면받는 상황에서도 여러 방면의 창의적인 디자인사고가 버려질 수밖에 없는 종이책의 운명을 100년 후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을까? 앞서 열거한 책과 라이브러리와 책에 관한 프로젝트 예시들은 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만들고, 이 덕분에 후대를 위해 희귀한 자료를 소장할 수 있게 됐다. 신규 비즈니스를 창출했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공헌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