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사랑하라, 그러나 간격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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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그러나 간격을 두라
너희 함께 태어나 영원히 함께하리라.
죽음의 천사가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신의 계율 속에서도 너희는 늘 함께하리라.
그러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창공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되 그것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너희 영혼의 해안 사이에 물결치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같은 잔을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같은 빵을 먹지 말라.
현악기의 줄들이 같은 화음을 내면서도 혼자이듯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서로의 가슴을 주되 그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신의 손길만이 너희 가슴을 품을 수 있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느니.
* 칼릴 지브란(1883~1931) : 레바논 출신의 미국 시인.
------------------------------------ (다음 주는 여름휴가로 한 회 쉬어갈까 합니다. 재충전하고 돌아와서 더 맛깔스런 시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침 시편’ 가족들도 휴가 잘 다녀오세요.)
오늘은 나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엊그제 출간한 책 『나무 심는 CEO』(고두현, 더숲)에도 소개한 내용인데요.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간격에 관한 얘기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생각이 한쪽으로만 꼬이는 사람끼리 만나면 부딪치게 됩니다. 갈등이 심해지면 자기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까지 망치고 말지요. 칡에 감긴 나무가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등나무 줄기에 목을 졸린 나무가 숨을 쉬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레바논 출신의 미국 시인 칼릴 지브란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창공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고 조언했죠. 이 멋진 말은 ‘결혼에 대하여’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는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든 나무든 밝은 햇빛을 받고 잘 자라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간격이 필요하지요. 인간(人間)이란 말부터가 ‘사람 사이’라는 의미잖아요. 물리학에서도 두 개의 입자가 가까울수록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이 커지는 만큼 밀어내는 반발력 또한 커집니다. 반발력을 줄이려면 입자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둬야 하지요.
식물 중에서 간격에 가장 예민한 것이 ‘미모사’입니다. 워낙 민감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양쪽 잎을 접어 버리죠. 작은 곤충의 날갯짓을 느껴도 잎을 접고, 해충이 제 몸에 내려앉을라치면 아예 잎자루를 밑으로 툭 떨어뜨리곤 합니다. 미모사의 사촌쯤 되는 자귀나무도 어두워지면 잎을 자동으로 모으지요.
이들은 밤낮의 변화와 외부 위험을 어떻게 알아챌까요? 생물학자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들도 몸속에 생물시계를 차고 있다고 합니다. 잎 속의 생체시계가 그때그때 관리해 준다니 놀라운 일이죠. 식물은 낮과 밤뿐만 아니라 계절이 바뀌는 것도 구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혹한과 폭염에 얼거나 말라 죽을 수 있으니까요.
느티나무 꽃은 녹색이에요.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고 향기도 없습니다. 화려한 꽃을 자랑하는 여느 나무와 다르지요. 그 대신 어디서나 잘 자라고 수명이 길어 500년 넘은 노거수가 많습니다. 다 자랐을 때 높이는 20~35m, 지름이 3m에 이르지요.
그 넓은 품으로 사람들에게 휴식까지 제공합니다. 쉴 휴(休)자는 사람(人)이 나무(木)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요. 생육과 번성, 휴식의 경계를 오가며 나무는 나이테를 하나씩 늘려 갑니다. 그때마다 몸속에 새로운 씨앗을 준비하지요.
『나무처럼 생각하기』의 저자인 프랑스 식물학자 자크 타상은 나무의 생명력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강조하며 씨앗이 잠든 상태에서 수백 년을 보내다가 깨어난 사례를 들려줍니다.
그에 따르면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대영박물관에 불이 났을 때, 147년 전 중국에서 채취한 자귀나무 씨앗이 휴면에서 깨어났습니다. 사해를 굽어보는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에서 약 2000년 만에 발견된 대추야자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워낸 적도 있지요.
나무의 씨앗은 꽃과 잎, 가지와 열매를 거쳐 다시 땅속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순환 고리를 통해 생과 사를 거듭하면서….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가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 나무는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다네”라며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내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노래한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너희 함께 태어나 영원히 함께하리라.
죽음의 천사가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신의 계율 속에서도 너희는 늘 함께하리라.
그러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창공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되 그것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너희 영혼의 해안 사이에 물결치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같은 잔을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같은 빵을 먹지 말라.
현악기의 줄들이 같은 화음을 내면서도 혼자이듯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서로의 가슴을 주되 그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신의 손길만이 너희 가슴을 품을 수 있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느니.
* 칼릴 지브란(1883~1931) : 레바논 출신의 미국 시인.
------------------------------------ (다음 주는 여름휴가로 한 회 쉬어갈까 합니다. 재충전하고 돌아와서 더 맛깔스런 시 이야기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아침 시편’ 가족들도 휴가 잘 다녀오세요.)
오늘은 나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엊그제 출간한 책 『나무 심는 CEO』(고두현, 더숲)에도 소개한 내용인데요.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간격에 관한 얘기입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덩굴식물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줄기를 감고 오릅니다. 칡은 대부분 왼쪽으로 감고, 등나무는 주로 오른쪽으로 감지요. 개중에 좌우를 가리지 않는 것도 있지만, 칡과 등나무가 다른 쪽으로 감고 오르다 얽히면 싸우게 됩니다. 이런 모습의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에서 유래한 말이 곧 갈등(葛藤)이죠.인간 세상에서도 생각이 한쪽으로만 꼬이는 사람끼리 만나면 부딪치게 됩니다. 갈등이 심해지면 자기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까지 망치고 말지요. 칡에 감긴 나무가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등나무 줄기에 목을 졸린 나무가 숨을 쉬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레바논 출신의 미국 시인 칼릴 지브란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창공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고 조언했죠. 이 멋진 말은 ‘결혼에 대하여’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는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든 나무든 밝은 햇빛을 받고 잘 자라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간격이 필요하지요. 인간(人間)이란 말부터가 ‘사람 사이’라는 의미잖아요. 물리학에서도 두 개의 입자가 가까울수록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이 커지는 만큼 밀어내는 반발력 또한 커집니다. 반발력을 줄이려면 입자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둬야 하지요.
식물 중에서 간격에 가장 예민한 것이 ‘미모사’입니다. 워낙 민감해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양쪽 잎을 접어 버리죠. 작은 곤충의 날갯짓을 느껴도 잎을 접고, 해충이 제 몸에 내려앉을라치면 아예 잎자루를 밑으로 툭 떨어뜨리곤 합니다. 미모사의 사촌쯤 되는 자귀나무도 어두워지면 잎을 자동으로 모으지요.
이들은 밤낮의 변화와 외부 위험을 어떻게 알아챌까요? 생물학자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들도 몸속에 생물시계를 차고 있다고 합니다. 잎 속의 생체시계가 그때그때 관리해 준다니 놀라운 일이죠. 식물은 낮과 밤뿐만 아니라 계절이 바뀌는 것도 구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혹한과 폭염에 얼거나 말라 죽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人)이 나무(木) 아래에 있는 게 휴(休)
이에 비해 느티나무는 비교적 무던하고 속이 단단한 나무입니다. 봄바람이 살랑댈 즈음 연한 햇가지를 슬며시 내밀기 시작하지요. 이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연녹색 꽃을 살살 밀어냅니다. 수꽃은 햇가지 아래쪽에 여러 송이로 돋고, 암꽃은 가지 끝에 한 송이만 핀답니다.느티나무 꽃은 녹색이에요.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고 향기도 없습니다. 화려한 꽃을 자랑하는 여느 나무와 다르지요. 그 대신 어디서나 잘 자라고 수명이 길어 500년 넘은 노거수가 많습니다. 다 자랐을 때 높이는 20~35m, 지름이 3m에 이르지요.
그 넓은 품으로 사람들에게 휴식까지 제공합니다. 쉴 휴(休)자는 사람(人)이 나무(木) 아래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요. 생육과 번성, 휴식의 경계를 오가며 나무는 나이테를 하나씩 늘려 갑니다. 그때마다 몸속에 새로운 씨앗을 준비하지요.
『나무처럼 생각하기』의 저자인 프랑스 식물학자 자크 타상은 나무의 생명력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강조하며 씨앗이 잠든 상태에서 수백 년을 보내다가 깨어난 사례를 들려줍니다.
그에 따르면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대영박물관에 불이 났을 때, 147년 전 중국에서 채취한 자귀나무 씨앗이 휴면에서 깨어났습니다. 사해를 굽어보는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에서 약 2000년 만에 발견된 대추야자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워낸 적도 있지요.
나무의 씨앗은 꽃과 잎, 가지와 열매를 거쳐 다시 땅속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순환 고리를 통해 생과 사를 거듭하면서….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가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 나무는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다네”라며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내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노래한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