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이단아' 아닌 '한국화의 현재화' 시도한 선각자"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과 '한국화의 이단아' 황창배(1947∼2001)가 함께 서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서울대 조소과 교수로 남 앞에 잘 나서지 않았던 김종영은 동양화과 졸업생 황창배의 부탁으로 결혼식 주례를 맡아 보기 드문 기념사진을 남겼다.

김종영 조각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설립된 김종영미술관은 매년 원로작가 초대전을 개최해왔다.

올해 전시는 이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황창배 유작전 '접변'(接變)이다.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김종영미술관 박춘호 학예실장과 황 화백의 부인 이재온 씨는 전공이 아닌 교수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서울미대생들은 전공과 관계없이 모두 김종영 교수를 존경했다고 전했다.

김종영은 한국미술이 당면한 최대 현안은 "우리의 지역적인 특수성에서 인류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동양과 서양의 보충과 보완을 강조했다고 한다.

황창배 역시 "밀가루로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제비, 국수도 해 먹을 수 있다"며 한국적 이미지를 찾고 드러내는 작업에 동양화가나 서양화가 모두 동참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처럼 한국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서양 미술을 보완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전시 제목도 '접변'이다.

서로 다른 문화의 다름을 인식하며 이를 토대로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다.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전시에는 서예와 전각, 수묵채색화, 유화 등 모두 32점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 1점을 제외하고 모두 이재온 씨가 운영하는 황창배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이다.

황창배는 31살 때인 1978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한국화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아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국전을 '졸업'하자 화면에 색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화선지 대신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으로도 작업했다.

서양화 재료를 사용한 그의 작품들은 한국화의 성질이 오롯이 담겼다.

한국화처럼 화면에 제발(題跋·작품에 관한 글)을 써넣었으며 붓질도 면보다 선의 특성을 살렸다.

서명의 연도마저 단기(檀紀)로 표기했다.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작가는 1980년대 후반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면 작품이 모두 팔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당대 사회 문제를 반영한 작품들도 남겼다.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때는 물고기 배 안에 오염물질이 들어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44살에 안정적인 교수직(이화여대)을 그만두고 충북 괴산에 작업실을 차리고 창작에 몰두했다.

1997년에는 북한 문화유산 조사단에 참가해 화가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황창배는 막내딸이 초등학생 때 그린 그림에 애정이 많았다고 한다.

딸의 스케치북을 한장 한장 카메라에 담았고, 딸에게 "나도 이렇게 그리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피카소가 아동미술전람회에서 "라페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 걸렸지만, 어린이처럼 그리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다는 일화와 비슷하게 황창배도 딸처럼 그리고자 왼손으로 붓질을 했다고 한다.

이런 파격은 훗날 장인이 된 철농 이기우 선생에게 서예와 전각을 배우고,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한학과 미술사를, 월전 장우성 선생에게 초상화를 배우는 등 기본 소양을 충실히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박춘호 학예실장은 "황창배는 당시 일군의 한국화 화가들이 서구 추상표현주의 영향으로 현대화를 모색할 때 정반대의 길을 갔다"며 "격을 갖췄기 때문에 파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실험적 작업을 했던 그는 담도암으로 2001년 별세해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박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히 '한국화의 이단아'가 아니라 '한국화의 현재화'를 주체적으로 시도한 선각자로 새롭게 조망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 기간은 9월 25일까지.
사진 한 장에서 비롯한 전시…김종영미술관, 황창배 유작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