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차웅이 오는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한국 초연하는 코른골트 영화음악을 설명하고 있다. 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지휘자 차웅이 오는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 한국 초연하는 코른골트 영화음악을 설명하고 있다. 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작곡가 에리히 코른골트(1897~1957)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한동안 잊힌 인물이었다. 10대 때 ‘모차르트를 뛰어넘은 천재 음악가’로 각광받았지만, 당대 음악계의 주류로 부상한 무조음악(악곡의 중심이 되는 조성이 없는 음악) 등 이른바 ‘신(新)음악’을 거부하면서 시대착오적인 구세대 작곡가 취급을 받았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약 10년간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로 큰 성공을 거뒀고, 전쟁이 끝난 뒤 고국으로 돌아와 클래식 작곡가로 복귀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싸구려 상업음악’에 팔아버린 타락한 음악가”라는 주류 음악계의 낙인과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랬던 코른골트의 음악은 1970년대 들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러 열풍 등으로 후기 낭만주의가 부활하고, 클래식에 기반을 둔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이 바뀐 덕분이다. 그의 영화음악 음반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바이올린 협주곡과 오페라 ‘죽음의 도시’ 등 대표작은 연주회의 주요 레퍼토리로 떠올랐다.

이런 코른골트의 음악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음악제가 열린다. 8월 12~21일 열리는 롯데콘서트홀의 여름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 2022’다. 코른골트와 멘델스존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열 차례 공연한다.

가장 눈에 띄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국내에서 연주된 적 없는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을 선보이는 17일 프로그램이다. 그가 작곡한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 ‘바다 매’ ‘킹스 로우’ 모음곡을 차웅(38)의 지휘로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이 연주한다.

지난 28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만난 차웅은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을 조명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신선하다’ ‘연주자는 물론 한국 청중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낯설지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을 소개하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차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 및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브장송 콩쿠르, 말러 콩쿠르와 함께 세계 최고 권위의 지휘 경연으로 꼽히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콩쿠르에서 2017년 1위 없는 2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착실히 지휘 경력을 쌓아온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코른골트가 남긴 영화음악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들은 뒤 연주할 세 편을 직접 골랐다.

“코른골트 음악에는 말러와 바그너, 푸치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시벨리우스 등 후기 낭만주의를 선도한 작곡가들의 영향이 고루 녹아 있으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화성과 선율이 나타납니다. 영화음악에서도 후기 낭만주의 오페라 기법을 쓰죠. 말러와 푸치니처럼 악보에 적어 놓은 각종 음악적 지시어를 통해 적절하게 극을 긴장·이완시킵니다.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 코른골트만의 순수하고 소박한 매력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골랐죠.”

세 편의 영화음악 중 차웅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은 ‘킹스 로우’(1942)다. 첫 팡파르를 들으면 누구나 존 윌리엄스의 ‘스타워즈’ 메인 테마를 떠올릴 법하다. 코른골트가 후대 영화음악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가슴이 확 열리는 폭발적인 도입부가 일품이죠.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중반부의 서정적 선율은 미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코른골트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비극적이고 슬픈 장면이 많아 곡 전반에 어두운 기운이 있지만 끝은 도입부의 사이다 같은 팡파르로 마무리합니다. 장기간의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악입니다.”

그는 “영화음악 전체가 아니라 축약본인 모음곡만으로 영상 없이 작품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내 청중이 오직 음악만으로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부에서는 코른골트가 15세에 작곡한 ‘신포니에타 B장조’를 들려준다. 시벨리우스는 이 곡을 듣고 “코른골트는 젊은 독수리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미래”라고 극찬했다. 차웅은 “당대 거장들에게 음악으로 존경을 표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아가겠다는 패기를 담아낸 작품”이라며 “코른골트가 영화음악으로 유명해졌지만, 근본적으로 클래식에 뿌리를 둔 작곡가임을 보여주고 싶어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