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에 쓰이는 차세대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또 반도체와 배터리, 희소광물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 함께 공급망을 구축하고 자원을 확보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2나노 반도체 공동개발

美-日, 초밀착 '반도체 동맹'…"中 대만침공에 대비"
미국과 일본 정부는 지난 29일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첫 번째 미·일 경제정책 협의 위원회(경제판 2+2)를 열고 이같이 합의했다. 올해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반도체 공동개발에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미국에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일본에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과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서 양국 장관들은 차세대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고 양산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연내 자국에 ‘차세대 반도체 공동 연구센터’를 신설할 계획이다. 연구센터에서는 회로 선폭 2나노미터(㎚, 1㎚=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연구한다. 양자컴퓨터와 AI 등 차세대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최첨단 반도체다. 일본 국립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와 도쿄대 등도 참가한다. 일본 정부는 2025년 양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중요 부품의 공급망을 공동 구축하고, 희소광물 등도 함께 확보하기로 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춰 세계 경제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로 분석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5%에서 2030년 24%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대만은 세계 10㎚ 미만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세계 첨단 반도체 공급이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개발, 일본은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며 “두 나라가 첨단 제품을 공동 개발해 대만 의존도를 낮춘다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방위 中 반도체 죽이기

미국과 일본 외교·경제장관들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데도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수출 관리 등을 강화해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인도와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탈(脫)중국화’를 유도하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최근 미국은 중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상무부가 최근 2주 사이 자국 내 모든 반도체 장비업체에 14㎚ 공정보다 미세한 제조기술을 적용한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10㎚보다 미세한 공정을 적용하는 반도체 장비가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에 수출되는 것을 규제해왔다. 수출 규제 기준을 10㎚에서 14㎚로 확대함에 따라 SMIC뿐 아니라 중국 반도체 기업 상당수가 영향을 받을 전망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한편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오는 3~5일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미·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 회의에서 외교전을 펼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