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당을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의총에 참석한 ‘친윤계’ 배현진 의원(왼쪽)과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밝은 표정으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국민의힘이 1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당을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의총에 참석한 ‘친윤계’ 배현진 의원(왼쪽)과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밝은 표정으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국민의힘이 당 위기 수습책으로 꺼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되레 당내 혼란을 더 키우고 있다. 비대위 전환 요건, 비대위원장 임명 등에 대한 당헌·당규 해석을 두고 혼란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자칫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앞세워 비대위 체제를 밀어붙이다가 ‘절차적 정당성 결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權, 비대위 의견 수렴 나서

국민의힘은 1일 의원총회를 열고 당 지도체제를 비대위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의총에는 국민의힘 의원 115명 중 89명이 참석했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고위원 사퇴와 관련해 당이 비상 상황이라는 의견에 극소수(1명)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동의했다”며 “비대위 발족과 관련한 모든 의결은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날 권성동 원내대표는 의총에 앞서 선수별 의원 간담회를 열고 비대위 체제에 관한 당내 의견을 들었다.

의총과 달리 최고위원 사이에선 이견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이날 매주 월요일 열던 최고위를 건너뛰었다. 정미경, 김용태 최고위원이 전날 불참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오전 10시30분 예정됐던 최고위원 간담회엔 권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만 참석해 사실상 불발됐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나와 “정치적인 명분도 찾지 못했고 원칙적으로 당헌·당규상 명분도 찾지 못했다”며 비대위 체제 전환을 비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권 원내대표를 겨냥해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자동 승계된 대표 권한(직무)대행만 사퇴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새로 선출된 원내대표에게 비상 대리권한을 줘 이준석 대표 체제의 공백을 메워 가는 게 정도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비대위 요건 두고 혼란 계속

비대위 구성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최대 쟁점은 비대위 출범 요건이다. 당헌·당규상 비대위 출범 요건인 최고위 기능 상실을 두고 ‘전원 사퇴’와 ‘정족수 과반 사퇴’ 주장이 맞서고 있다.

비대위를 요구하는 친윤계는 자진 사퇴한 김재원 전 의원과 징계받은 이준석 대표를 뺀 7명 중 과반인 4명이 사퇴하면 비대위 전환이 된다고 해석한다. 권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의결권을 가진 최고위 구성원 9명 중 5명이 사의하고 당대표는 사고(事故) 상태여서 정상적인 당무의 심의 의결이 불가한 상황이라는 평가가 다수”라고 말했다. 반면 ‘친이준석계’로 꼽히는 정미경, 김용태 최고위원은 ‘전원 사퇴’해야 요건이 충족된다고 맞서고 있다.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과 절차도 문제다. 당헌 96조에 따르면 비대위원장은 전국위 의결을 거쳐 당대표 또는 대표 권한대행이 임명한다. 이 대표는 징계를 받아 사고 상태고 권 원내대표는 직무대행이라 임명 권한이 없다.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에 관한 당헌을 바꾸려고 해도 당헌개정 발의는 상임전국위 의결 또는 전당대회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어야 한다.

법적 공방 리스크도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비대위 체제가 되면 사고 상태인 이 대표의 복귀가 사실상 봉쇄되기 때문이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대위 구성은) 당원권 6개월 정지가 아닌, 제명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대표가 법적 대응을 하면 (법원이) 가처분을 받아주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비대위가 차기 전당대회를 위한 체제인 만큼 당권 다툼이 재연될 우려도 있다. 당헌상 당대표의 남은 임기가 6개월 이상이면 60일 이내 임시 전대를 열어야 한다. 이 대표 임기가 내년 6월까지인 만큼 임시 전대를 치러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 다시 전대를 열어 새 지도부를 또 뽑아야 한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당헌을 고쳐 임시가 아닌, 조기 전대를 열고 새 당대표에게 2024년 총선 공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당권 주자 간 정치적 셈법이 제각각인 탓에 조기 전대 시기는 또 다른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 중진의원은 “위기 수습책으로 꾸린 비대위가 또다시 당권 다툼에 휘말리면 지지율만 더 깎아먹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양길성/노경목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