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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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저케이블 시장을 뚫기 위한 중국 전선업체의 입찰 참여가 늘면서 국내 전선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외산업체 진입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는 민간 주도 사업 수주를 노리고 중국 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저가 공세’에 나서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국산’이 태양광과 해상풍력 등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기자재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저케이블마저도 동일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전선업계에 따르면 중국 1위 전선회사인 형통광전(亨通光電)은 지난해 말 한국에 ‘리전(지역) 사무소’를 설립했다. 중국 전선업체가 한국 사업을 위해 국내에 사무소를 차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형통광전 관계자는 “한국 해저케이블 시장은 향후 큰 성장이 기대되고 사업 가능성도 보이는 시장”이라며 “한국 사무소를 필두로 한국 해저케이블 사업 수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전선업체들은 민간 업체가 주도하는 해저 사업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단지의 송전 등에 사용되는데, 우리 정부나 공기업이 주도로 진행하는 사업엔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따라 외산업체가 해저케이블을 납품할 수 없다. 반면 민간 주도 사업엔 중국 제품도 공급이 가능하다. 공기업이 일부 지분을 투자해 진행하는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중국 업체가 해저케이블 사업을 수주할 수 있다.

해저케이블은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봐도 국내업체들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특히 한국 시장에선 영향력이 더욱 크다. 지금까지 중국 업체가 국내 해저케이블 사업을 수주한 사례는 없다. 다만 중국 전선업체들의 한국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시도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내 업체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민간 프로젝트를 맡은 시행사들이 형통광전과 ZTT 등 중국 전선업체에 사업 견적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며 “설계·조달·시공(EPC) 참여업체 등이 컨소시엄 참여 요청을 보내는 등 중국 업체에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내 전선업계는 중국 업체들이 이른바 ‘가격 후려치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 시장을 뚫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품 단가를 낮춰 견적서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전선업체 영업팀 직원은 “민간 사업자가 해저케이블의 안전성, 제품 성능, 사후지원(AS)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가격만으로 중국산 제품을 택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의 한국 해저케이블 공급이 이뤄진다면 국내 업체들의 수익성 감소는 물론 중장기적으론 향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우리 주권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특히 전선 시장이 태양광 시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태양광 산업은 지난 수년간 중국의 저가·물량 공세에 따른 기자재가 대거 유입됐다.

중국 업체들이 인버터 등 태양광 핵심 기자재 시장을 잠식하면서 중국산 재료 의존도도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OCI와 한화솔루션은 2020년 태양광 패널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 한국 생산을 중단했고, SKC는 같은 해 태양광 모듈 보호 원자재인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 시트 사업에서 손을 뗐다. LG전자는 지난 6월 태양광 패널 사업에서 철수했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