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내년엔 휴가지 대통령을 보고 싶다
지난달 중순 네 살 꼬마를 데리고 휴가를 떠나볼까 했는데, 졸지에 집에 갇히고 말았다. 가족 모두 코로나19에 걸렸다. 몸 컨디션은 그렇다 치고, 답답하고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격리 기간이) 2주였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위안 삼아 7일을 지냈다. 보통 직장인이 이럴진대, 대통령은 오죽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부터 서울 서초동 자택에 머물고 있다. 당초 지방의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로 휴가 갈 계획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다 여권의 3축(대통령실·여당·내각)이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면서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에서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게 된 배경이다.

스스로 밝힌 원칙 돌아볼 기회

휴가지로 향하려던 윤 대통령의 발길을 잡은 표면적인 이유는 지지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갤럽의 7월 넷째 주(26~28일) 조사에선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28%까지 하락했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이런 지지율 속에 지방에서 휴가를 즐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취임 이후 지방선거 때까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엔 거침이 없었다. 취임식에 이은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지방선거 승리…. 지난 대선이 박빙 승부였다는 걸 감안하면 지지율도 나름 견조했다. 출근길 도어스테핑, 기업인들과 격의 없이 만나 기를 북돋웠던 행사는 분명 과거 대통령과 다른 행보였다.

위기는 바로 그때 찾아왔다. 각종 인사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 발언들이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정부 내 정책 불협화음과 여당의 내홍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의 문자 노출은 지지율 30%를 붕괴시킨 결정타였다.

언론과 국민의 박한 평가에 윤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정치 진출 이후 일관되게 밝혔던 원칙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윤 대통령은 작년 11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내로남불은 없을 것이다. 원칙과 소신, 상식과 진정성으로 다가가겠다”며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지지와 성원이 언제든지 비판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 시각에서 80여 일의 국정 운영이 원칙에 부합했는지 냉철하게 평가해야 반전도 가능하다.

한남동에선 쓴소리를 들었으면

대통령이 자택에서 사실상 칩거해야 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선에서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도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만난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대형 악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두 달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니 우리도 사실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국정 운영 동력을 잃으면 정책이 먹히지 않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에겐 변화의 계기가 될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이달 중순 결혼 후 10년간 지내온 서초동을 떠나 한남동의 새 대통령 관저로 이사한다. 노출 없이 사람들을 만나 식사하며 대화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쓴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누굴 만났는지가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교류하면 어떨까.

윤 대통령 임기는 4년9개월 남아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국민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지지율은 뒤따라 올라올 것이다. 그래야 내년엔 저도든, 청남대든 지방 휴가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대통령 모습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