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신세계" 두 눈 의심케 한 풍경…압구정에 무슨 일이?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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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보셨어요? 완전 신세계네요”
카톡으로 사진 하나가 날아왔다. 압구정로데오 거리의 한여름 새벽 풍경이었다. 시간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사진 속엔 인파가 가득했다. 카톡을 보낸 30대 후반의 후배는 “진짜 압구정이 부활했나 봐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압구정,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1993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필자에게 세음절의 그 단어는 선망과 경멸이란 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안겼다. 헌정사상 첫 문민정부가 들어선 그 해에 압구정은 일종의 문화 해방구였다. 때마침 ‘X 제너레이션(세대)’,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새로운 세대 및 시대 규정들이 나오면서 강남 한복판의 압구정은 각종 문화적 세례들로 조명을 한 몸에 받았다.
10년 넘게 침체에 빠져 있던 압구정로데오 상권이 최근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BC카드에 따르면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올 상반기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8.2%로 전국 평균(7.55%)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19.3%)와 30대(33.4%)의 비중이 높은 가운데 40대(20.1%)와 50대(15.3%)도 빈번하게 방문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수 상권이 상대적으로 20대(26.4%)는 많고, 40대(17.1%)는 적은 것과 대조적이다.
유통 및 상권 전문가들은 압구정로데오 부활의 요인으로 고급 의식주 문화의 총합을 꼽고 있다. 맛집과 카페 등 음식을 넘어 명품 패션과 고품격 리빙 콘텐츠들이 한 곳에 집결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준범 GFFG 대표 등 압구정 토박이들이 주도한 공간을 활용한 브랜딩 전략, 코로나19로 인한 서울 상권 지도의 변화가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번성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압구정로데오에 대한 주목도를 확 높인 일등 공신은 카페 노티드다.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한 고도의 브랜딩 전략에 ‘핫플’을 찾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집객력을 극대화했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상권을 이루는 핵심은 음식인데 과거엔 맛이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맛보다는 공간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소위 ‘고객의 시간을 점령’할 수 있는 곳들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티드의 성공엔 공간 외에도 그들만의 신비주의 전략도 효과를 발휘했다. 입소문을 탔음에도 매장 수를 확대하지 않는 식으로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폭발시켰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여러 차례 구애를 펼쳤지만, 압구정·청담 일대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갤러리아백화점에만 입점한 것도 이 같은 신비주의의 일환이다.
노티드를 운영하는 GFFG가 호족반, 다운타우너 등 다른 류의 음식점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이준범 GFFG 대표와 뜻을 함께한 또 다른 압구정 토박이 출신의 창업가들이 주변에 밀집하면서 압구정로데오 상권은 일종의 ‘식·음료 클러스터’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 있는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2012년에 압구정로데오역이 완공되면서 교통 체증 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데다 오랜 기간 침체를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임대료도 낮아졌다”며 “코로나19를 겪으며 이태원 등에 있던 유명 쉐프들이 압구정 쪽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객 유입량으로만 보면 성수 상권에 뒤처지지만, 소비자들의 체류 시간이나 씀씀이 측면에선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위력이 더 클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압구정을 비롯해 청담동 일대는 갤러리아백화점을 중심으로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곳이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거 면세 상품을 도입했고, 행사가 끝난 뒤에 이들 해외 브랜드들이 갤러리아 등 압구정, 청담동 일대로 모여들었다”고 설명했다.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부활은 도심 재생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침체 당시에서 여전히 서울의 노른자위 땅이었던 곳을 지방 원도심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상권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 지에 대해선 벤치마킹 모델로 참고할만하다. 지역에 애정을 가진 젊은 창업자들, 이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고도의 브랜딩 전략, 미식과 카페 외에 패션과 리빙까지 아우른 의식주 문화의 집결 등이 주요 체크 포인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카톡으로 사진 하나가 날아왔다. 압구정로데오 거리의 한여름 새벽 풍경이었다. 시간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사진 속엔 인파가 가득했다. 카톡을 보낸 30대 후반의 후배는 “진짜 압구정이 부활했나 봐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압구정,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1993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필자에게 세음절의 그 단어는 선망과 경멸이란 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안겼다. 헌정사상 첫 문민정부가 들어선 그 해에 압구정은 일종의 문화 해방구였다. 때마침 ‘X 제너레이션(세대)’,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새로운 세대 및 시대 규정들이 나오면서 강남 한복판의 압구정은 각종 문화적 세례들로 조명을 한 몸에 받았다.
토박이들이 부활시킨 압구정 상권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압구정의 화양연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4년 10월 분당선 전철역인 압구정로데오역 착공이 시발점이었다.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에다 차량 정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임대료 급등으로 젊은 상인들이 인근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연남동 등 대안 상권으로 옮기면서 압구정은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압구정 메인 거리의 임대료는 2009년 3.3㎡당 1억 2000만원을 찍고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10년 넘게 침체에 빠져 있던 압구정로데오 상권이 최근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다. BC카드에 따르면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올 상반기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8.2%로 전국 평균(7.55%)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19.3%)와 30대(33.4%)의 비중이 높은 가운데 40대(20.1%)와 50대(15.3%)도 빈번하게 방문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수 상권이 상대적으로 20대(26.4%)는 많고, 40대(17.1%)는 적은 것과 대조적이다.
유통 및 상권 전문가들은 압구정로데오 부활의 요인으로 고급 의식주 문화의 총합을 꼽고 있다. 맛집과 카페 등 음식을 넘어 명품 패션과 고품격 리빙 콘텐츠들이 한 곳에 집결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준범 GFFG 대표 등 압구정 토박이들이 주도한 공간을 활용한 브랜딩 전략, 코로나19로 인한 서울 상권 지도의 변화가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번성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압구정로데오에 대한 주목도를 확 높인 일등 공신은 카페 노티드다.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한 고도의 브랜딩 전략에 ‘핫플’을 찾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사진 찍기 좋은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집객력을 극대화했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상권을 이루는 핵심은 음식인데 과거엔 맛이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맛보다는 공간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소위 ‘고객의 시간을 점령’할 수 있는 곳들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티드의 성공엔 공간 외에도 그들만의 신비주의 전략도 효과를 발휘했다. 입소문을 탔음에도 매장 수를 확대하지 않는 식으로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더욱 폭발시켰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여러 차례 구애를 펼쳤지만, 압구정·청담 일대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갤러리아백화점에만 입점한 것도 이 같은 신비주의의 일환이다.
노티드를 운영하는 GFFG가 호족반, 다운타우너 등 다른 류의 음식점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이준범 GFFG 대표와 뜻을 함께한 또 다른 압구정 토박이 출신의 창업가들이 주변에 밀집하면서 압구정로데오 상권은 일종의 ‘식·음료 클러스터’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압구정로데오역 인근에 있는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2012년에 압구정로데오역이 완공되면서 교통 체증 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데다 오랜 기간 침체를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임대료도 낮아졌다”며 “코로나19를 겪으며 이태원 등에 있던 유명 쉐프들이 압구정 쪽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객 유입수로는 성수가 압구정로데오의 3~4배
맛과 공간의 중요성은 성수 상권의 고속 성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프라인 위치 데이터 전문 스타트업인 로플랫에 따르면 압구정로데오의 7월 낮 시간대 방문자 수는 1000~1900명 사이다. 밤 시간엔 700~1500명 수준이다. 로플랫이 측정하는 모바일 신호만을 집계한 것으로 해당 상권의 전체 방문자 수를 나타내는 숫자는 아니지만, 같은 기준으로 성수 상권 방문객을 살펴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성수 상권은 7월 한 달간 최대 방문자 수가 8000명을 웃도는 날도 있었다. BC카드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성수가 압구정로데오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매출 상승률이 16.4%로 압구정로데오(8.2%)의 두 배에 달한다. 이에 대해 BC카드 관계자는 “성수는 다른 상권에 비해 음식점의 비중이 60.8%로 압도적으로 높다”며 “맛집을 찾는 이들이 상권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경우 일반음식점의 비중은 16.4%에 불과하다. 성형외과 등 의료 기관이 21%에 달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압구정로데오는 음식점이나 카페 외에 명품 등 해외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핵심 방문객”이라고 설명했다.방문객 유입량으로만 보면 성수 상권에 뒤처지지만, 소비자들의 체류 시간이나 씀씀이 측면에선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위력이 더 클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압구정을 비롯해 청담동 일대는 갤러리아백화점을 중심으로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한 곳이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거 면세 상품을 도입했고, 행사가 끝난 뒤에 이들 해외 브랜드들이 갤러리아 등 압구정, 청담동 일대로 모여들었다”고 설명했다.
"의식주 총합 상권이 장기 생존엔 유리"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리빙 편집숍인 10꼬르소꼬모도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부활에 한 몫을 맡고 있다. 가구, 방석, 조명 등 각종 인테리어 용품에서부터 글로벌 트렌드를 담은 장난감 등 소품까지 한자리에 모아 둔 곳이다.압구정로데오 상권의 부활은 도심 재생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침체 당시에서 여전히 서울의 노른자위 땅이었던 곳을 지방 원도심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상권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 지에 대해선 벤치마킹 모델로 참고할만하다. 지역에 애정을 가진 젊은 창업자들, 이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고도의 브랜딩 전략, 미식과 카페 외에 패션과 리빙까지 아우른 의식주 문화의 집결 등이 주요 체크 포인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