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이 이어온 고위급 대화와 협력 채널을 대거 단절했다.

중국 외교부는 5일 양국 군사 지도자 간 전화통화를 비롯해 양국 국방부 실무자회담, 해상 군사안보 협의체 회의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의 강렬한 반대와 엄정한 항의를 무시한 채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 방문을 강행한 데 대해 제재 조치를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 외교부는 미국과 중국 간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형사사법 범죄자 협력 및 다국적 범죄 퇴치 협력, 마약 퇴치 협력, 기후변화 협상 등을 모두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대화·협력 단절 대상에 경제 분야와 외교당국 사이의 대화 채널은 포함하지 않았다. 양국 관계를 전면적 단절 수준으로 몰고 가지는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당국은 같은날 펠로시 의장과 그 직계가족을 제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우려와 확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방문해 중국 내정에 심각하게 간섭했다”고 제재 이유를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을 겨냥해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훼손하며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짓밟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했다”고 비판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악질적이며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중국은 제재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전례에 비춰 중국 입국 제한, 중국 내 자산 동결, 중국 기업·개인과 거래 금지 등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2~3일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 미국 하원의장으로선 25년 만이다.

전날 미국 당국도 중국과 신경전을 벌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중국이 군사훈련을 한 4일 친강 주미 중국대사를 긴급 초치해 항의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도발 행위에 항의하려고 친강 대사를 백악관으로 불렀다”며 “우리는 무책임한 중국의 군사행동을 비난했다”고 밝혔다.

이날 펠로시 의장은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조찬 회담을 한 뒤 중국이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한 데 대해 “중국이 우리의 (대만) 방문을 구실로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방문은 대만의 현상 변경을 위한 게 아니라 대만해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만이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도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4일 발사한 탄도미사일 다섯 발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진 것을 두고 “지역과 국제사회 평화·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중국의 이번 행동은 국제사회의 평화·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기시다 총리와의 조찬회담에서 약 1시간 동안 북한 정세, 우크라이나전쟁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아시아 순방의 마지막 방문지인 일본에 도착한 펠로시 의장은 이날 호소다 히로유키 중의원 의장과 회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