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증산 여력이 충분하지만, 의도적으로 증산량을 축소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올해 겨울 에너지 대란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OPEC의 원유 증산? 시기상조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는 중동 원유업계 내부 소식통 3명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원유 증산 여력을 일부러 숨겼다고 보도했다. 한 중동 원유업체 관계자는 “올 겨울 유럽에선 천연가스를 구하지 못할 것이고, 러시아산 원유 가격은 상한선을 넘기게 될 것”이라며 “이 때를 대비하려면 지금 당장 원유를 풀 순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일(현지 시간)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회의에서 9월 증산량은 10만 배럴로 합의됐다. 7월과 8월 증산량(하루 64만8000배럴)의 15%에 그쳤다. 실제 증산 여력을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할당량은 3만 3000배럴에 그쳐 증산량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동 원유업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200만 배럴, UAE는 하루 270만 배럴 상당의 예비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증산 여력이 충분하지만 올 겨울 에너지 대란을 염두한 탓에 9월 증산량을 큰 폭으로 늘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중동 원유업계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위기가 도래했을 때 사우디와 UAE가 장기적으로 증산여력이 있다고 공표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OPEC이 증산량을 서서히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OPEC이 증산량을 늘리지 않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질 거란 판단에서다. 서방국가와 러시아 사이의 치킨게임이 길어질 거란 전망에 따라 원유를 비축한다는 설명이다. 원유 중개업체인 PVM의 애널리스트인 타마스 바르가는 “OPEC+의 8월 예비 증산량은 하루 100만 배럴을 밑돌고 있다”며 “불확실성에 대처하려 미리 완충재를 채워놓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OPEC 증산 여력은 충분…올 겨울 대란 노리고 원유 안 풀어"

증산은 못 하지만, 가격은 높일 수 있지

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 아람코는 아시아로 수출하는 9월 인도분 아랍 경질유 공식판매가격(OSP)을 전월 대비 배럴당 0.5 달러 인상했다.

전문가들이 전망한 인상 폭인 1.5달러보단 낮았다. 하지만 아시아로 향하는 9월 아랍 경질유 가격은 배럴당 9.8달러로 오르면서 지난 5월(9.3달러) 이후 역대 최고가를 다시 갈아치웠다. 다른 유종인 아랍 슈퍼 라이트, 엑스트라 라이트, 미디엄, 헤비 등에 대한 OSP도 모두 인상됐다.

OSP는 사우디 아람코가 아시아로 수출하는 원유 평균 가격에 붙이는 일종의 프리미엄이다. 원유가격에 OSP를 더해 최종 가격이 결정된다. 아람코가 아시아 등에 원유를 수출할 때 더 비싸게 판다는 설명이다. 아람코는 원유 판매량의 60%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에 매도한다.

가격인상에는 아시아 원유 수요가 견고할 거란 판단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는 “아시아 국가에선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이후 원유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며 “미국에선 원유재고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아시아 상황은 다르다”고 보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