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다'
중국 당나라 때 한 지역의 현령이 부패와 실정을 일삼았다. 백성들은 온갖 세금과 부역에 시달렸다. 현령의 부하들은 한술 더 떴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고발장을 냈다. 거기엔 최측근 부하의 죄목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다. 화들짝 놀란 현령은 판결문에 ‘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너희가 풀을 건드렸지만 나는 뱀처럼 놀랐다)’라는 문구를 쓰며 자기 잘못을 돌아봤다.

단성식의 수필집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주변 사람을 징계함으로써 당사자를 각성하게 한다’는 뜻이다. 고발장에 놀란 현령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했으니 백성들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셈이다.

타초경사의 의미는 다른 비유로도 쓰인다. 병법에서는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삼십육계의 한 계략으로, 적 스스로 실체를 보이도록 유인하는 전술이다. 이럴 때 가벼운 도발이나 거짓 공격으로 공포를 느끼게 해서 도망가게 한다.

정치적으로는 ‘숨은 적을 찾아내는 방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오쩌둥의 위장 전술이다.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한 그는 1950년대 후반, 지식인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하라”고 부추긴 뒤 이를 믿고 쓴소리한 비판자 55만 명을 숙청했다.

타초경사의 또 다른 비유는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긁어 부스럼처럼 괜히 풀을 건드렸다가 뱀에 물릴 수 있다는 얘기다. 고사성어 하나가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지닌 경우도 드물다. 요즘 정치판의 단면들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듯하다.

출범 석 달밖에 안 된 새 정부는 헤게모니 쟁탈전과 국정 난맥으로 삐걱대고 있다. 당정 분란과 인사 혼란으로 허둥대는 대통령실,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다툼에만 몰두하는 의원들, 거짓 선동과 편 가르기에 바쁜 정상배들, 국가 실익보다 사리사욕에 눈먼 모리배들….

진짜 고수라면 단순히 풀을 쳐서 뱀을 쫓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권력 주변을 두루 단속하면서 예기치 못한 초임자들의 실정까지 막아야 한다. 풀을 치는 것은 나를 지키는 대응 전략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날카로운 낫에 뱀이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까지 배려하는 선행전략이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