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칩4와 한·중 관계 시즌2
미국 주도의 반도체 국제 공급망 협력체 ‘칩4(Chip4, 한·미·일·대만)’에 대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상당히 적확한 표현을 썼다. 안 의원은 미국의 칩4 참여 요구를 영화 ‘대부’ 속 돈 콜레오네(말런 브랜도)의 유명한 대사 ‘거절할 수 없는 제안(an offer that he can’t refuse)’에 비유했다.

돈 콜레오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두 가지 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나는 패밀리 일원으로서 로열티를 확인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거절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도체 동맹을 지향하는 칩4는 곧 반도체의 국제 생태계다. 미국의 원천 기술과 설계, 일본의 소재·장비, 한국과 대만의 생산 능력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것이 반도체의 국제 산업 구조다. 이런 공생 관계에서의 이탈은 반도체산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칩4는 이제 예비회의를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미국이 추구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확고해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공백의 허점을 해소하는 것과 가치 동맹국 간 견고한 반도체 동맹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구상은 반도체 및 연관 기술 우위를 위해 2800억달러(약 363조원)를 투입하는 사상 최강의 경제안보법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의 ‘가드레일’ 조항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로 보조금(총 520억달러)과 세액공제(25%) 혜택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우려 국가(country of concern)’에 28나노미터 이하 설비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28나노 이하면 거의 모든 반도체 설비가 포함되며, ‘우려 국가’는 당연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칩4의 가동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제조 대국 중국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10나노 이하의 미세공정에는 손도 못 대는 반도체 약소국(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으로 묶어둘 경우 통신·로봇 등 첨단산업 육성과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夢) 로드맵에 큰 타격을 안길 수 있다.

칩4가 중국몽 달성에 걸림돌이 된다면 중국은 반도체 기술·인력 빼가기에 더 집착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칩4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한층 거칠게 흔들 것이다. 이런 우려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상업적 자살’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운운하며 한국을 옥죄고 있다. 반도체 수출의 중국 비중이 홍콩우회수출을 포함 60%에 달하는 한국에는 이런 협박성 표현들이 결코 가벼이 들릴 수 없다. 요소수 파동의 잔영과 함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오는 24일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의 시즌2는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의 과열 양상을 감안하면 중국과 마찰을 일으킬 사안은 산적해 있다. 칩4의 전개 과정은 물론 성주의 사드 기지 정상화시 중국이 또 어떤 보복에 나설지 예측하기 힘들다. 한국과 기술 격차를 좁혔고 일부에서는 추월했다고 판단한 중국은 사드 사태를 계기로 수직적 관계 요구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과거 수천년간의 복속주의 망령이 다시 꿈틀대는 형국이다.

한·중 관계에서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선제적 공포’(<외교의 부활>)다. 휴가가 핑곗거리가 된 윤석열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간 면담 불발 및 의전 홀대도 선제적 공포의 작용이 아닐까 싶다. 이런 근본적 두려움이 있는 한 중국 의존도 축소 노력이나 자강(自彊)론은 공허할 뿐이다. 오늘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회담 내용 및 우리 정부의 대응 행보가 주목된다. 정부의 대처는 결국 국민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중 관계 시즌2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의 중국을 바라보는 자세부터 굳세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