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현지 생산 전기자동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통과시켰다. 하원 통과와 조 바이든 대통령 서명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된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미국 업체는 혜택을 보겠지만,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4330억달러(약 578조원) 규모의 ‘그린 부양안’이 핵심인 인플레 감축법안은 기후 변화 대응용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 인상, 부자 증세 등을 담고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내년부터 미국산 배터리를 쓰고,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신차 7500달러, 중고차 4000달러)을 지급하도록 했다. 아이오닉 5 등 전기차를 전량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현대차·기아는 보조금을 못 받는다.

현대차가 오는 11월 GV70 전기차를, 기아는 내년 하반기 EV9을 미국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이 정도로는 태부족이다. 조지아주에 짓기로 한 연산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도 2025년 상반기에나 완공된다. 당장 미국 생산 계획을 크게 앞당기고 물량도 확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기차 전환은 노사 모두의 생존이 달린 문제인 만큼 한국 물량을 미국으로 옮기는 과정에 노조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2분기 2위(10.3%)였던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달 4위(7.6%)로 내려앉아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산 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배터리업계도 비상이 걸린 것은 마찬가지다. 배터리 원재료의 40% 이상(2029년엔 100%)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해야 보조금 수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면서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전략 산업의 기술 및 생산 혁신, 새 공급망 개척 등 기민한 대처가 중요해졌다. 미국의 공급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한국 수출 기업들에 ‘발등의 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