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렸다하면 수백억…전세계 뒤흔든 '얼굴 없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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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리뷰 - '뱅크시'
英이 미켈란젤로 보다 사랑하는 화가
2018년 소더비 나온 '풍선과 소녀'
낙찰되자마자 분쇄기로 '파쇄'
소더비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 충격
돈으로 가치 매기는 미술시장에 경종
초창기 그라피티 예술가로 시작
단순한 낙서 넘어 사회·정치 의미
거리에서 누구나 작품 감상케 해
함께 작업했던 화가 인터뷰 통해
그의 숨겨졌던 이야기 조명
英이 미켈란젤로 보다 사랑하는 화가
2018년 소더비 나온 '풍선과 소녀'
낙찰되자마자 분쇄기로 '파쇄'
소더비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 충격
돈으로 가치 매기는 미술시장에 경종
초창기 그라피티 예술가로 시작
단순한 낙서 넘어 사회·정치 의미
거리에서 누구나 작품 감상케 해
함께 작업했던 화가 인터뷰 통해
그의 숨겨졌던 이야기 조명
“우리는 뱅크시당했다(We’ve been Banksy-ed).”
2018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선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경매 시장을 주름잡는 소더비의 유럽 현대미술 책임자로 미술품 경매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알렉스 브랜식조차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영국 출신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는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그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는 당시 소더비에서 104만2000파운드(약 16억66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경매사가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액자 속 그림이 세로로 잘려나갔다. 뱅크시가 작품이 파쇄되도록 액자를 설치해, 낙찰되는 순간 잘려나가게 한 것이다. 전 세계 미술계와 대중은 ‘뱅크시다운’ 그의 파격적인 행동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는 11일 국내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뱅크시’는 기발한 상상력, 과감하고 혁신적인 행보로 매번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거리의 아티스트 뱅크시의 이야기를 담았다. 뱅크시는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로 꼽혔을 정도다.
이야기는 미술계를 뒤흔든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사건은 그림의 가치를 발견하기보다 돈으로 작품의 가치를 매기고 환산하기 바쁜 미술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괴’를 통해 예술을 완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뱅크시는 “파괴의 욕구는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큐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소더비 경매 장면을 배치해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도 미술 시장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작품은 초반엔 뱅크시 예술의 출발점이 된 그라피티에 대해 주로 다룬다. 뱅크시와 함께 작업했던 그라피티 예술가, 미술사학자 등을 두루 인터뷰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다큐는 뱅크시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역사와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그라피티 예술이 어떻게 탄생했고 발전했는지 분석한다.
그라피티는 1980년대 대처리즘에 맞선 자유와 저항정신을 발판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단순한 낙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정치적 의미까지 담아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큐는 중반부터는 뱅크시 개인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든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화가’인 만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매체를 통해 익명으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큐는 목소리로 해당 인터뷰 내용을 재현해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뱅크시가 직접 출연한 듯한 착시효과가 일어나며,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뱅크시는 소더비 경매에서뿐 아니라 기발하고 재밌는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파문을 일으켜왔다. 그는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 등에 진품과 비슷한 그림을 몰래 걸기도 했다. 그런데 관람객은 물론 미술관 관계자들도 이 작품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뱅크시가 미술관에 가서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벌인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다큐에선 뱅크시가 실천하고 있는 ‘대중을 위한 미술’의 의미도 되짚는다. 다큐 속 전문가들은 “거리에 그려진 뱅크시의 작품들을 보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멈춰서서 생각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특정 계층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온 거리에서 누구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어엿한 ‘고가’ 작품의 화가가 됐다. 파쇄됐던 ‘풍선과 소녀’는 이후 다시 경매에 나와 18배나 높은 가격인 300여억원에 낙찰됐다. 브래드 피트, 앤젤리나 졸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도 그의 작품을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뱅크시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그는 미술사에서 어떤 화가로 기억될까. 이 질문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돌아가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엘리오 에스파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2018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선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경매 시장을 주름잡는 소더비의 유럽 현대미술 책임자로 미술품 경매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알렉스 브랜식조차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영국 출신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는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그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는 당시 소더비에서 104만2000파운드(약 16억66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경매사가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액자 속 그림이 세로로 잘려나갔다. 뱅크시가 작품이 파쇄되도록 액자를 설치해, 낙찰되는 순간 잘려나가게 한 것이다. 전 세계 미술계와 대중은 ‘뱅크시다운’ 그의 파격적인 행동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는 11일 국내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뱅크시’는 기발한 상상력, 과감하고 혁신적인 행보로 매번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거리의 아티스트 뱅크시의 이야기를 담았다. 뱅크시는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로 꼽혔을 정도다.
파격과 도발의 화가
다큐멘터리는 뱅크시가 그라피티(벽에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그리는 그림)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초창기부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최근 행보에 이르기까지의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이야기는 미술계를 뒤흔든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사건은 그림의 가치를 발견하기보다 돈으로 작품의 가치를 매기고 환산하기 바쁜 미술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괴’를 통해 예술을 완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뱅크시는 “파괴의 욕구는 창조의 욕구”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다큐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소더비 경매 장면을 배치해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도 미술 시장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작품은 초반엔 뱅크시 예술의 출발점이 된 그라피티에 대해 주로 다룬다. 뱅크시와 함께 작업했던 그라피티 예술가, 미술사학자 등을 두루 인터뷰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다큐는 뱅크시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역사와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그라피티 예술이 어떻게 탄생했고 발전했는지 분석한다.
그라피티는 1980년대 대처리즘에 맞선 자유와 저항정신을 발판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단순한 낙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정치적 의미까지 담아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큐는 중반부터는 뱅크시 개인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든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화가’인 만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매체를 통해 익명으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큐는 목소리로 해당 인터뷰 내용을 재현해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뱅크시가 직접 출연한 듯한 착시효과가 일어나며,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뱅크시는 소더비 경매에서뿐 아니라 기발하고 재밌는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파문을 일으켜왔다. 그는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 등에 진품과 비슷한 그림을 몰래 걸기도 했다. 그런데 관람객은 물론 미술관 관계자들도 이 작품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뱅크시가 미술관에 가서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벌인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미술관의 장벽을 허문 ‘모두의 예술’
도발적이고 발칙한 행보에 뱅크시는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파격 속에 담긴 속뜻 때문이다. 뱅크시는 2005년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평화의 의미를 담은 사다리, 천국의 이미지를 그려넣어 호평을 받았다. 그가 자주 그리는 아이, 자연, 동물은 사랑스러우면서도 유머와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다큐에선 뱅크시가 실천하고 있는 ‘대중을 위한 미술’의 의미도 되짚는다. 다큐 속 전문가들은 “거리에 그려진 뱅크시의 작품들을 보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멈춰서서 생각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특정 계층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온 거리에서 누구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어엿한 ‘고가’ 작품의 화가가 됐다. 파쇄됐던 ‘풍선과 소녀’는 이후 다시 경매에 나와 18배나 높은 가격인 300여억원에 낙찰됐다. 브래드 피트, 앤젤리나 졸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도 그의 작품을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뱅크시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그는 미술사에서 어떤 화가로 기억될까. 이 질문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돌아가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엘리오 에스파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