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
역사 빼면 빈 깡통과 같아
미셸 자우너 등 한국계 작가
미국 독자들 주목하고 있어
한국인 이야기 더 나와야
차기작은 한국 학원 이야기
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장편소설 <파친코>를 쓴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사진)는 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젊은 독자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채워주기 위해 ‘뿌리’에 대한 소설을 썼다”고 설명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4대에 걸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등에 오르며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애플TV+가 1000억원을 투입하고 윤여정, 김민하, 이민호 등 유명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다. <파친코>는 전 세계 33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국내에는 2017년 출간된 뒤 출판사를 바꿔 최근 재출간됐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미국 이민 길에 오른 이민진 작가는 우연히 접한 재일 한국인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수십 년 동안 품고 있다가 결국 재일 한국인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됐다.
“대학 시절 ‘땡땡이’를 치고 싶어서 일본에 사는 미국인 선교사 특강을 들으러 갔어요. 거기서 열세 살 재일 한국인 중학생이 학교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모가 나중에 졸업앨범을 봤더니 ‘김치 냄새가 난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글이 적혀 있었대요. 그 이야기가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라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있었어요.”
그는 “199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소설가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파친코>뿐만 아니라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등 한국계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에 미국 독자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작가는 “한국 문화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그간 해온 노력, 한국 문화계에서 만든 훌륭한 작품들이 합쳐져 나온 성과”라고 했다. 다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한국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독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지만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며 “톨스토이를 읽으면 러시아 사람이 되고,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인이 되듯이, 제 책은 모두 한국인의 시선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집필 중인 차기작도 한국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가 정한 제목은 ‘아메리칸 학원’. 한국 안팎 한국인들의 교육열과 그 이유, 교육이 사회적 지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교육이 때로 사람을 어떻게 억압하는지에 주목한 소설이다. 그는 “한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원’이라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며 “그래서 ‘아카데미’로 번역하는 대신 한국어 단어를 그대로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파친코>의 새 번역본은 현재 1권만 판매 중이고 2권은 이달 안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가는 9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리는 사인회, 10일 세종대에서 개최되는 북토크를 통해 한국 독자를 만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