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주일대사가 8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 배상 소송과 관련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에 대해 “현금화 조치를 동결하고 외교의 공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사는 8일 일본 도쿄 주일한국대사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 (사이에) 수십조원, 수백조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행을 위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하면 일본이 보복하고 한국도 대응에 나서 한국과 일본 기업이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윤 대사는 현금화 결정을 통해 피해자들이 얻을 이익보다 국내 기업이 입을 손해가 더 크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일본 기업의 국내 상표권이나 특허권 등을 매각해도 (피해자들이) 충분히 배상받을 만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아주 작은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사는 “현금화의 마지막 단계다. 현금화를 막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피해자와 지원단체들이 외교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일본의 호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사는 “한국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일본도 같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 노력에 일본 정부도 호응할 것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고위 인사가 공개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에 의견을 밝히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 소속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일선에서 일본과 소통하고 협상해야 하는 주일대사가 법원을 압박하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외교원장 출신인 윤 대사는 2019년 한 강연에서 “국회 특별법으로 법원이 이 문제(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개입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외교부는 9일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 협의회 3차 회의를 개최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전범진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