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내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긍정적인 임상 1상 중간 결과를 발표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를 시작으로, 보로노이 에이비온 등 차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개발 기업들이 하반기에 잇따라 연구개발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브릿지바이오는 전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2022 세계폐암학회(IASLC 2022 WCLC)’에서 차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 ‘BBT-176’의 1상 주요 결과에 대해 구두 발표를 진행했다.

BBT-176는 신규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티로신인산화효소 억제제(EGFR TKI)다. 비소세포폐암에서 3세대 치료제인 ‘타그리소’와 ‘렉라자’ 등의 치료 이후에 나타나는 ‘C797S’ 돌연변이를 저해하는 기전이다.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은 주로 ‘엑손 19 결손’과 ‘L858R’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치료를 위해선 1세대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성분명 제피티닙)와 ‘타세바’(성분명 얼로티닙)를 처방한다. 이들 치료제의 반응률은 약 70%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T790M’ 변이가 진행되면서 약물 효과는 1년이 채 지속되지 않는다.

이때 투약하는 약물이 3세대 폐암 치료제인 ‘타그리소’와 ‘렉라자’다. 타그리소와 렉라자는 T790M 변이 EGFR 폐암에 우수한 효능을 보인다. 하지만 3세대 치료제를 복용한 이후에는 C797S와 MET 증폭 변이가 나타난다.

최근 타그리소가 2차 치료제에서 1차 치료제로 지정되면서, C797S와 MET 증폭 변이 환자가 더욱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타그리소를 1차 치료제로 복용하면 이중 변이가 나타나고, 1~2세대 치료제와 타그리소를 모두 복용하면 삼중 변이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3세대 약물 치료 이후 진행되는 변이와 내성 등에 대해 승인받은 치료제는 없다. 치료제가 개발되면 상업적 성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현재 세계에서 C797S 변이 표적 EGFR TKI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은 미국 블루프린트 메디슨스와 국내 브릿지바이오 두 곳이다. 개발 속도가 앞선 건 블루프린트다. 블루프린트는 C797S 표적을 포함하는 ‘BLU-945’와 ‘BLU-701’을 확보해, 타그리소와 병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중국 자이랩에 중화권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6억1500만달러에 기술이전했다.

BLU-945는 L858R과 T790M, C797S를 표적으로 한다. BLU-701은 T790M을 제외한 L858R과 엑손19 결손, C797S에 효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블루프린트는 지난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BLU-945의 1·2상 개념증명 데이터를 발표했다. 1·2상에서는 타그리소를 포함해 최소 3차 치료 받은 폐암 환자 33명을 대상으로 BLU-945를 하루 한 번 25~400mg 투여했다. 시험 결과, 한 명의 환자에게서 ‘미확정 부분관해(uncomfirmed PR)’가 관찰됐다. 블루프린트가 공개한 AACR 초록에 따르면 고용량(400mg) 환자에서 30%의 종양 감소를 확인했다. 4~5등급의 심각한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하반기, 차세대 폐암 치료제 긍정적 연구결과 발표 기대

국내에서는 브릿지바이오와 보로노이가 C797S 변이를 표적하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에이비온은 MET 증폭 변이를 표적으로 신약을 개발 중이다. 이들 기업 모두 올 하반기에 의미 있는 데이터 발표를 앞두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브릿지바이오의 후보물질은 블루프린트와 경쟁할 만한 성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브릿지바이오는 삼중 돌연변이를 표적하는 BBT-176과 이중 돌연변이를 표적하는 ‘BBT-207’을 개발하고 있다.

전날 학회에서는 복약 중단 없이 100일 이상 지속적으로 BBT-176 치료를 이어 나가고 있는 임상 대상자들의 방사선학적 반응(radiologic response)과 분자유전학적 반응(molecular response)의 상관성에 대한 데이터가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이 데이터는 5월 말 기준으로 집계됐다.

회사에 따르면 액체생검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BBT-176이 표적하는 C797S 포함 삼중 돌연변이 동반 환자의 경우 최대 53%까지 EGFR 유전자 검출 빈도가 감소했다. 방사선학적으로도 유의미한 수준의 종양 크기 감소를 확인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1상의 1차 유효성 평가지표인 약물 안전성과 관련해서도 용량에 비례하는 안정적인 약동학적 프로파일을 확인했다. 주요 이상반응으로는 낮은 등급의 위장관 부작용과 피부 발진 등이 관찰돼,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브릿지바이오는 전했다.

BBT-176은 현재 1·2상의 용량상승시험 가운데 주용량군 시험을 마무리하고, 가속승인 근거 자료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추가 확장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브릿지바이오는 C797S 양성 이중 돌연변이를 표적하는 BBT-207의 전임상도 진행하고 있다. BBT-207은 타그리소를 1차 치료제로 복용한 후 발생하는 엑손19 결손과 C797S 변이, 또는 L858R과 C797S 변이를 표적한다.

전임상에서 용량의존적으로 암 크기가 감소했으며, 이레사와 타그리소 대비 우수한 효능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올해 안에 BBT-207의 1상을 신청한다는 목표다.

보로노이가 개발하고 있는 ‘VRN11’도 임상에 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 VRN11는 엑손19 결손과 L858R, C797S 변이를 표적한다. 오는 10월 열리는 학회에서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보로노이는 올해 안에 임상을 신청할 예정이다.

김태희 KB증권 연구원은 “아직 전임상 단계이기에 많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높은 선택성으로 경쟁사 대비 우수한 효능과 낮은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블루프린트의 BLU-701과 비교하면 선택성은 약 2~3배, 뇌 투과율은 2배 이상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에이비온의 ‘ABN401’은 MET 변이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MET 변이 역시 타그리소 복용 후 발생하는 주요 내성 변이로 꼽힌다. 타그리소가 1차 치료제로 쓰였을 때 약 15%, 2차 치료제로 쓰였을 때 약 10~30%의 비율로 MET 증폭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ABN401은 1상에서 ‘캡마티닙’ ‘테포티닙’ 등 경쟁 약물보다 안전성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용량을 50mg에서 1200mg까지 늘렸지만 용량제한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3등급 이상의 이상반응 비율은 0%였다. 유효성은 고형암 환자 16명을 대상으로 PR 2명, 안정병변(SD) 6명으로 질병통제율 50%를 달성했다.

에이비온은 내달 열리는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이와 관련된 3건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예나 기자 ye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