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공정’에 민감한 것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만이 아니다. 희끗희끗한 머리, 거친 손과 깊게 팬 주름에서 그간 겪었을 갖은 풍파와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중소기업인들도 공정을 중히 여긴다. 그들의 목소리는 요란하진 않지만 분명하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혁신의 가치가 부동산의 가치보다는 크게 대접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강승구 케이원전자 대표는 “기업 하는 사람들이 남다른 대접을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세금을 내는 만큼만 사회가 대우해줬으면 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모두 중소기업이 합당한 사회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중기인들이 비슷한 맥락에서 공정의 가치를 언급하는 데는 그들이 겪은 아픈 경험이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천형(天刑)' 소리 듣는 중기

외형적으로 중소기업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2020년 말 현재 국내 전체 기업의 99.9%(728만 개)를 차지하고, 전체 기업 종사자(2158만 명)의 81.3%(1754만 명)를 담당할 정도로 중기가 맡은 역할은 절대로 적지 않다.

하지만 중기인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현실은 합당한 ‘대접’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한국에서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을 영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품 개발과 생산, 판로개척, 인력확보에서부터 인사관리까지 뭐 하나 순탄한 것이 없다. “꼬박꼬박 월급날이 돌아올 때마다 등에서 진땀이 흐른다”는 중기 사장들의 공통된 고백은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납품 대기업부터 각종 인허가와 규제 권한을 앞세우는 관청까지 눈치 볼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상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인 배임 혐의는 수시로 경영인을 압박한다. “최저임금밖에 못 줄 거면 회사 문을 닫아라”는 식의 비아냥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오죽하면 중기를 이끄는 것을 두고 ‘천형(天刑)’에 빗대기까지 할까 싶다.

이런 중기인에 대한 ‘저평가’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도적·비의도적으로 눈을 감은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달리"

그간 한국 사회에선 토지, 노동, 자본의 소위 ‘생산의 3요소’ 중 노동의 가치만 과도하게 부각된 게 사실이다. 섣부른 선악의 이분법에 기반해 기업인을 ‘가진 자’ ‘악인’으로 치부하고, 폄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일군 것은 ‘노동’이라기보다는 기업·경영인의 활동을 포함하는 ‘자본’일 것이다. 똑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미국과 아프리카 근로자의 수고에 다른 값이 매겨지는 것은 그들이 속한 기업의 생산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사회를 발전시키고 공동체의 부를 키울 혁신을 잉태한 것도 수많은 위험을 떠안은 기업가정신이었다. 온갖 위험을 마다하지 않은 기업가들은 그들의 도전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것은 같이 대우하고 다른 것은 달리 대접한다(equals should be treated equally and unequals unequally.)”는 준칙으로 ‘공정’을 정의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중기인들을 남과 동등한 기준으로 대우하고 있는지, 또 그들이 낸 남다른 성과에 걸맞게 평가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