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옥산면 농경지 4.4㏊ 침수, 물 빠진 비닐하우스 참혹
[르포] 진흙 뒤집어쓴 애호박 모종…추석 출하 불가능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서 1만㎡의 애호박 농사를 짓는 정모(66)씨는 12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흙 범벅된 비닐하우스 안을 둘러봤다.

세찬 장대비가 퍼부으면서 순식간에 비닐하우스를 집어삼킨 흙탕물은 이틀간 양수기를 돌려 가까스로 빼냈지만, 물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밭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밭이랑을 덮었던 비닐 멀칭은 여기저기 찢겨 엉망이 됐고, 물기 흥건한 고랑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펄로 변했다.

정씨와 외국인 노동자 4명이 땀범벅이 된 상태로 수마의 흔적을 걷어냈지만,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르포] 진흙 뒤집어쓴 애호박 모종…추석 출하 불가능
덥고 습한 날씨 탓에 하우스 안은 숨쉬기조차 힘들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끈적끈적한 진흙 덩어리가 발길을 붙들었다.

정씨는 귀농 12년 차 농부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애호박 재배 기술을 배워 한창 농사 재미를 부치던 터였다.

그러나 지난 8일 이후 나흘간 이어진 폭우는 풍년 농사를 꿈꾸던 그의 희망을 일순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기간 청주에는 370㎜의 비가 내렸다.

이로 인해 옥산면 일대 농경지 4.4㏊가량이 물에 잠겼다.

비 피해를 본 그의 애호박도 추석 대목을 겨냥해 지난 6일 옮겨 심은 모종이다.

정씨는 "10년 넘는 농촌 생활에서 이런 물난리를 처음 겪는다"며 "애호박 모종은 죄다 죽었고, 진흙을 뒤집어쓴 비닐멀칭도 걷어내야 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모종을 심으면 한 달 지나야 수확을 하는데, 땅이 물을 먹은 상태에서는 모종을 다시 심어도 살아남지 못한다"며 "올 추석 농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르포] 진흙 뒤집어쓴 애호박 모종…추석 출하 불가능
주변 농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씨 밭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는 진흙을 뒤집어쓴 토마토 모종이 그대로 방치돼 있고, 어른 무릎 높이로 흙탕물이 출렁거린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인근 김모(60)씨의 애호박 비닐하우스도 물난리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모종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어 며칠 지켜볼 예정이지만 큰 기대 안 한다"며 "올해 이른 추석이라 다른 해보다 애호박 재배를 늘렸는데 이 꼴이 됐다"고 토로했다.

[르포] 진흙 뒤집어쓴 애호박 모종…추석 출하 불가능
그러면서 이번 피해는 농경지 앞을 가로질러 도로가 새로 나는 바람에 생긴 '인재'(人災)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는 이 정도 비로 농경지가 침수되지는 않았다"며 "도로가 뚫리면서 배수로가 좁아지는 바람에 물 빠짐이 늦어졌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