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이후 이재명 의원과 기재부가 다시 맞붙은 분야는 '국유재산 매각'입니다. 기재부는 지난 8일 향후 5년간 '16조원+α' 규모의 국유재산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매년 2조원 안팎의 국유재산을 민간에 매각해왔는데, 향후 5년 동안엔 매각 규모를 50% 넘게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정부가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유휴·저활용 재산을 민간에 넘기면 보다 생산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입니다.
이재명 의원과 기재부의 갈등이 표면화된 시기는 정부의 국유재산 매각 확대방침 발표 이틀 뒤인 이달 10일입니다. 이재명 의원이 이날 페이스북에 '국유재산 민영화는 소수 특권층 배불리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포문을 연 것이죠.
페이스북 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재명 의원은 국유재산 매각 자체를 '민영화'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유재산 민간 매각은 '소수 특권층 배불리기'"라고도 했습니다. "매각한 국유재산을 누가 사겠느냐. 시세보다 싼 헐값에 재력 있는 개인이나 초대기업에 돌아가게 되고, 부동산 가격상승과 투기가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재명 의원은 또 "당장 활용계획이 없는 유휴지라도 추후 스타트업·중소기업 지원단지나 임대주택 건설 등 꼭 필요한 국가정책을 추진할 때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땅과 건물이라도 나중엔 잘 활용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이재명 의원은 "권력을 이용해 민생 위기를 소수 특권층 배불리는 기회로 삼겠다는 저의가 아니기를 바란다"며 "기재부가 국회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국유재산을 팔지 못하도록 국유재산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국회 원내 과반인 169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법을 개정하면 기재부의 국유재산 매각 확대 방침엔 차질이 불가피하겠죠. 게다가 차기 민주당 대표로 유력한 이재명 의원이 법 개정을 방침을 못박으면서 기재부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입니다.
발등이 불이 떨어진 기재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출신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재명 의원의 페이스북 글이 올라온 다음날인 11일 세종 기재부 청사에 있는 기자실을 찾았습니다. 이재명 의원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추 부총리는 "정말 뜬금없는 지적이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전국에 산재한 국유재산 가운데 놀고 있는 땅,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땅과 건물을 매각한다고 했는데 이게 왜 갑자기 민영화와 연결되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며 "재산을 활용도 높게 (민간에) 돌려주기 위해 조사 중이고, 또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매각을 할 예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추 부총리는 "근거 없는 상상력이 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말했습니다. 평소 친근하면서도 정제된 화법을 구사해 '주변에 적이 없다'는 평가를 들어온 추 부총리 치고는 상당히 강하게 반발한 것입니다.
추 부총리가 기자들을 향해 이재명 의원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키운 것은 국유재산 매각을 하루 이틀 해온 것도 아닌데 이재명 의원이 대뜸 '민영화'라는 프레임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7년 2조4000억원, 2018년 2조원, 2019년 2조원, 2020년 2조1000억원, 2021년 1조7000억원의 국유재산을 매각했습니다. 이재명 의원이 속한 민주당이 집권한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총 10조2000억원의 국유재산을 매각했는데 윤석열 정부의 국유재산 매각만을 민영화로 규정짓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기재부 입장입니다. 기재부는 또 정부가 어차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자산을 민간에 매각하면 자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접수된 국유재산 매입 요청 대기 건수는 약 2700건으로 국민의 매입 수요도 많은 상황이죠.
아마 기재부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지점은 '특혜' 논란일 것입니다. 정부가 국유재산을 공무원의 지인이나 특정 업체에 이익을 몰아주기 위해 헐값에 매각하는 경우가 발생할 경우 도덕적 비판은 물론 사법적 리스크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의원이 '특권층 배불리기'라는 프레임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특권층 배불리기 사례를 찾아내지 못할 경우 이재명 의원에게 비판의 부메랑이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매년 2조원 안팎의 국유재산을 매각해온 만큼 투명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매각 시스템을 구비해왔는데, 특혜 사례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정부의 국유재산 매각은 공개경쟁입찰이 원칙이고, 수의매각을 하는 경우에도 전문기관의 감정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