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공기업 한국전력이 빈사 상태에 빠졌다. 올해 상반기에만 14조3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적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라니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다.

초우량 기업이던 한전이 어쩌다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는지는 누구나 다 안다. 문재인 정권의 탈(脫)원전 정책과 표퓰리즘적 전기료 동결이 주범이다. 값싼 원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고집한 결과 문 정부 출범 첫해 109조원이던 한전 부채는 지난 3월 말 156조원으로 불어났다. 스스로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를 무력화시켜 전기료 현실화 숙제를 윤석열 정부로 떠넘긴 것도 문 정권이다.

한전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나는 역마진 구조다. 연료 가격이 급등해 한전이 발전 자회사로부터 전기를 사올 때 지급하는 전력도매가가 올 상반기 ㎾h당 169.3원으로 1년 전보다 117.1% 올랐다. 반면 한전이 가정과 공장 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가격은 110.4원에 그쳤다. 적자가 더 쌓이면 한전은 채권 발행마저 막혀 빚을 내 버티기도 어려워진다.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두 배 이내에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 한도가 바닥날 전망이다.

한전의 만성 적자를 해결하는 길은 원가를 반영해 전기료를 현실화하는 정공법 외에는 없다. 지난 4월(㎾h당 6.9원)과 7월(5원)에 이어 10월(4.9원)에도 전기료 인상이 예정돼 있지만,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고물가를 감안하면 전기료를 한꺼번에 크게 올리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석탄 등 연료값 상승분을 전기료에 반영한 뒤 세금 감면과 할인,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저소득층 등 배려 대상을 지원하는 건 어떤가. 전기료 정상화를 위한 5~10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도 필요하다. 전기료 현실화는 기업과 가계의 전기 절약을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세계 3위 수준이지만, 가정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1%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싸다. 무수익 자산 처분 등 한전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치솟는 물가가 두려워 전기료 인상을 마냥 제한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꼴이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를 독립기구화하고, 전기료를 산정할 때 원가주의를 철저히 적용해 한전이 더 이상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