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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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첫 광복절 축사인데 감흥이 없습니다. 올드(낡은)한 느낌도 주네요.”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를 지켜 본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렇게 총평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를 매년 지켜봐왔다는 그는 “출범 초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폭락한 위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의 참모들은 8·15 광복절 축사 때 “대한민국 대통령의 새로운 역사관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획기적인 대북정책도 예고했다. 실제 윤 대통령의 축사는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미 충분히 다뤄졌던 ‘자유’를 다시 강조했을 뿐 “민주주의 최고 위기는 반지성주의” 등처럼 국민들에게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새롭게 공개된 내용은 새 정부 대북 정책인 ‘담대한 구상’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협상에 나서면 그 단계에 맞춰 대규모 식량공급과 항만·공항 현대화 등 6가지 분야 경제 지원방안을 과감하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경제 협력을 대가로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이끌어내는 ‘햇볕 정책’이 이미 여러 정부에서 시도됐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담대한 구상’에도 과거 보수 정부에선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내용들도 있다. 대통령실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경우 초기 단계에서 경제 협력을 추진하고 유엔 제재까지 선제적으로 풀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런 파격적인 내용들이 죄다 대통령의 축사엔 빠진 것은 다소 의문스럽다. 북한이 절실하게 원하는 ‘체제 안전 보장 방안’은 준비를 하고도 공개는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첫 광복절 축사가 앙꼬없는 찐빵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외교가에선 유엔이나 미국과 사전 협의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사전에 치밀하게 각본을 짜고 추진돼야 할 보수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이 서투르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지난달까지 탈북 어민 북송 사건 등으로 여론 몰이에 앞장섰던 대통령실 참모가 발표한 대북 유화 정책을 북한이 신뢰할 수 있겠냐”(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는 지적엔 귀가 기울여진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 방한 땐 대통령실 참모들이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서열 3위 인사를 왜 만나지 않느냐는 여론에 떼밀려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의 방한 다음날 전화통화를 시도한 것은 외교 참사에 가깝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등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을 두고 첨예하게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아마추어라고 그렇게 비판했던 보수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대통령실 인적 쇄신은) 정치적 득실을 따져서 할 문제는 아니다”며 “실속있고 내실있게 변화를 주겠다”고 했다. 지금껏 거론돼 온 정무와 홍보 뿐 아니라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들도 찬찬히 점검해 보길 권한다.
오락가락 尹정부…외교·안보 라인도 문제다 [여기는 대통령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