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이재명 방탄’ 논란을 불러온 당헌 80조 1항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비대위는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을 때 당 내부 논의를 통해 당직 정지를 면제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수정했다.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된 뒤 기소되더라도 자체 판단을 통해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관련 논의가 친명(친이재명) 대 반명(반이재명)의 계파 싸움 구도로 흘러가자 부담을 느낀 비대위가 절충안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비대위에서 또 뒤집힌 ‘전준위 안’

민주당 비대위는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당헌 80조 1항을 개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80조 1항은 당직자가 부정부패 관련으로 기소됐을 때 직무를 정지하는 내용으로, 전날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는 당직 정지가 1심에서 금고 이상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이뤄지도록 하는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다만 비대위는 1항의 예외 조항인 당헌 제80조 3항을 수정해 ‘1항에도 불구하고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로 기소됐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에서 달리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당 윤리심판원이 지닌 판단 권한을 내부 조직인 당무위로 이임한 것이다. 신현영 대변인은 “80조 1항은 과거 당 혁신위원회가 도덕성 강화를 위해 만든 조항으로, 당시 혁신위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정치 탄압 및 정치보복이 유력한 현 상황을 고려해 절충안을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친명 “이게 동지애인가” 반발

80조 1항 개정을 희망했던 친명계에서는 반발이 나왔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박찬대 의원은 “선택적 수사와 기소로 무장한 윤석열 정권을 상대로 도덕적 완벽주의에 빠져 맨몸으로 적과 싸우라고 종용하는 것이 진정한 동지애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공개적으로 이번 개정에 반대해온 반명계에서는 비대위의 결정을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이 의원과 맞붙은 박용진 의원은 “당심과 민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비대위의 결정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용우, 박재호, 한정애 세 의원이 각각 초선, 재선, 3선 의원들의 의견을 취합했는데 다수가 전당대회 준비위 안에 반대했다”며 “비대위는 전당대회 준비위에서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논의하길 바랐는데, 전당대회 준비위가 강경한 단일안을 제시해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재수정 가능성은 작아

비대위가 이날 의결한 수정안은 오는 19일 당무위원회와 23일 중앙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논의에 따라 비대위 안이 다시 한번 뒤집힐 수도 있다. 다만 당내에서는 친명과 반명 양측의 의견을 반영한 절충안 성격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다수가 외부 인사로 구성되는 윤리심판원과 달리 당무위는 당 소속 의원 및 시·도지사 등으로 구성된다”며 “이 의원이 당심을 잃지 않는다면 직무 정지를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이날 당 강령 수정 내용도 공개했다. 민주당은 강령에 ‘조세 정의와 재정 민주주의’ 조문을 신설하고 ‘정치적 다원주의 원칙’도 도입해 다당제 지향을 당론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 의원의 대선 공약인 ‘기본소득’ 도입도 논의됐지만 의원 여론조사에서 55%가 반대해 포함되지 않았다.

전범진/이유정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