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등 재건축 추진 아파트와 1기 신도시에서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을 두고 ‘맹탕 대책’이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시범현대.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서울 강남 등 재건축 추진 아파트와 1기 신도시에서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을 두고 ‘맹탕 대책’이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시범현대.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정부 출범 전부터 화끈하게 규제를 풀어줄 것처럼 하더니 또 시늉만 한 거잖아요. 희망 고문만 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납니다.”(서울 서초구 A아파트 재건축 조합 관계자)

정부가 지난 16일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을 내놨지만, 서울 강남권과 수도권 1기 신도시 등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 주민들은 ‘올스톱 상태인 재건축 동력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란 실망감이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 발표안대로라면 재건축 초과이익 예정 부담금이 최고 7억여원에 달하는 강남, 용산 등지 재건축 아파트는 부담금이 불과 수천만원 줄어드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도 2024년에야 중장기 개발 계획이 수립될 예정이어서 실제 첫 삽을 뜨기까진 십수 년이 더 걸릴 것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

“초과이익 면제 상향, 언 발에 오줌”

정부는 재건축 최대 걸림돌로 지목되는 초과이익 환수제에 대해 “사업 추진을 저해하는 수준의 부담금을 적정 수준으로 완화해 다음달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현행 3000만원 이하인 초과이익 면세 기준을 1억원 정도로 상향 조정하는 데 그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여당(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은 최고 과표 구간도 현행 1억1000만원 초과에서 2억2000만원 초과로 높였다.

이에 대해 서울 강남권과 용산 등의 재건축 추진 단지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효과밖에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 작년 8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센트레빌아스테리움(반포현대 재건축)의 초과이익 부담금 예정액은 가구당 3억3650만원이다. 여당 개정안대로 부담금 부과 기준이 적용되면 부담금이 가구당 2억9150만원으로 4500만원 줄어드는 데 그친다. 지난달 역대 최고인 가구당 7억7000만원의 예정 부담금을 통보받은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의 부담금 감면 폭도 1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포센트레빌아스테리움 조합 관계자는 “은퇴 후 별다른 소득 없이 집만 한 채 소유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3억원에 달하는 큰돈을 어디서 구하느냐”며 “정부의 완화 방안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서울 강북 소규모 아파트나 지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송파구 잠실동 B공인 관계자는 “정권 교체를 전후해 유예돼온 ‘부담금 폭탄’을 민간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던 이 정부에서 터뜨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강남권 재건축 추진 아파트에선 초과이익 산정 때 적용하는 주변 집값 상승률이 시세보다 낮게 적용돼 부담금이 과도하게 높게 나온다는 불만도 나온다.
"규제 푼다더니 희망고문만 당해"…강남·분당·일산 '격앙'

“1기 신도시 총선용 볼모로 잡아”

경기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주민들도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마스터플랜)이 2024년으로 예상보다 늦춰진 데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1기 신도시는 지난해 분당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총 27만여 가구가 재건축 가능 연한인 ‘입주 30년 차’를 넘기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과밀을 막기 위해 만든 지구단위계획의 용적률 제한에 묶여 있어 현재로선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은 현행 지구단위계획을 뛰어넘는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아파트 모임인 이종석 신도시재건축연합회 부회장은 “연말에는 재정비를 위한 청사진이 어느 정도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정부 발표대로면 속절없이 최소 2년을 손 놓고 기다리게 되는 셈”이라며 “정권 말기로 가면서 특별법 제정도 결국 유야무야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분당구 수내동 C아파트 재건축 추진 준비위원장은 “소유주 단체 채팅방에 ‘특별법을 2024년 총선 매표용 이슈로 끌고 가려는 속셈 아니냐’ ‘1기 신도시 주민이 인질인가’ 등의 항의성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재건축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아파트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헌형/이혜인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