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수진의 발, 박민지의 손
“손 좀 볼 수 있을까요?”

한 달여 전 ‘국내 최강 여자골퍼’ 박민지 선수를 취재차 만났을 때 불현듯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발 사진이 떠올랐다. 그가 ‘발레의 전설’이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발’ 사진 말이다. 작년(6승)에 이어 올해(3승)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다승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세’ 골퍼의 손도 강 단장의 발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궁금증에 실례일 수 있는 요청을 던졌다.

잠깐 머뭇거리던 박 선수가 왼손을 내밀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굳은살은 손가락 마디마디는 물론 손바닥에도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하얬다. 장갑을 왼손에만 끼기 때문이다. 햇빛에 까맣게 그을린 오른손은 남의 손인 듯했다.

굳은살 가득한 박민지의 손

그 왼손엔 박 선수의 지난 10여 년이 담겨 있었다. 그는 골프채를 처음 잡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밥 먹는 시간 빼곤 연습만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한국체대 축구 전공 대학생들과 똑같이 매일 10㎞ 넘게 뛰었고, 중학교 1학년 때는 9홀짜리 파3 골프장을 하루 일곱 번씩 돌았단다. 한 언론 인터뷰에선 “‘연습-밥-연습’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일상을 365일 반복하다보니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중학교 때 기억 나는 사건이 한 개도 없더라”고 했다.

지독했던 훈련은 박 선수에게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스윙’과 한여름 땡볕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선사했다. 이 덕분에 그는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가 됐고, 프로로 전향한 뒤엔 KLPGA를 평정했다. 그러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업계의 유행어가 됐다.

얼마 전 만난 강 단장도 기자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발레리나 강수진은 없었다”고. 그래서 “못생긴 발을 부끄러워한 적 없다”고.

따지고 보면 노력 없이 대가가 된 사람은 없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마이클 조던도 세상이 다 아는 연습벌레였다.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을 서른 아홉번이나 고칠 정도로 공들여 글을 썼고, ‘전설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6시간씩 연습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큰 보상을 받는 건 세상사 당연한 이치다. 그래야 다들 맡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애쓸 것이고, 그 힘이 모여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노력의 가치 인정해야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에서 노력의 가치는 폄훼되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먼 훗날의 성공을 위해 차곡차곡 실력을 쌓기보다는 코인·주식·부동산 투자로 당장의 일확천금을 노린다. 그리곤 조기은퇴하는 ‘파이어족’을 꿈꾼다. “꼬박꼬박 월급 모아봤자 내 집 마련도 못하는데, 뭣하러 열심히 일하느냐”는 것이다.

헛다리 짚은 부동산 정책뿐 아니라 업종별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도 “열심히 일할 필요 없다”고 부추기긴 마찬가지다. 해외 경쟁업체보다 빨리 신제품을 내놔야 할 대기업 연구개발(R&D) 인력도,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주 52시간 트랩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다.

‘열심히 일하는 인력’은 폐허였던 대한민국을 10대 경제 강국으로 일으켜 세운 단 하나의 자원이었다. 남들이 다 갖고 싶어 하는 이 소중한 자원을 우리 스스로 내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함께 ‘땀방울’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 정책 전환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