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이름에 브랜드를 얹다’…현대카드 슈퍼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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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 「케이스스터디」
레전드 아티스트 ‘앞’에 붙는 신용카드 브랜드
소비자 인지도 높여 현대카드 팬으로 만들어
‘마케팅 성과는 브랜딩에 따라 달라진다’ 입증
레전드 아티스트 ‘앞’에 붙는 신용카드 브랜드
소비자 인지도 높여 현대카드 팬으로 만들어
‘마케팅 성과는 브랜딩에 따라 달라진다’ 입증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가수가 공개될 때마다 나오는 반응이다. 올해 슈퍼콘서트를 이끌 레전드 아티스트는 누구인지가 팬들의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비욘세(2007년), 스티비원더(2010년), 폴 매카트니(2015년), 콜드플레이(2017년) 등 누구나 알 만한 아티스트들의 콘서트가 펼쳐졌다. 현대카드가 티켓팅을 제외한 모든 기획을 맡고, 공연에는 항상 ‘현대카드’의 이름이 붙는다. 슈퍼콘서트의 팬이자 현대카드의 팬이 나오게 된 이유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그 자체로 '네임드'가 됐다. 아티스트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콘서트장의 변천사를 보면 슈퍼콘서트의 팬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에만 해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만 열리던 슈퍼콘서트는 이제 야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다. 규모를 비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마치 일본을 찾는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도쿄 돔이나 사이마타 돔을 찾는 것과 같은 원리다.
8월15일에도 미국 탑가수 빌리 아일리시(20)가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공연을 했다. 공연의 이름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빌리 아일리시 예매는 20분만에 끝났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아티스트가 정해지면, 슈퍼콘서트의 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소식을 퍼나른다. “슈퍼콘서트 가려고 현대카드를 발급받는다”는 말이 커뮤니티에서 나올 정도다. 슈퍼콘서트 예매를 하려고 현대카드를 쓰는 비중은 2007년 64%에서 2022년 90%로 뛰었다.
결과적으로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의 인지도를 업계 최하위에서 3위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현대카드는 2001년 현대차가 인수할 당시만 해도 ‘워크아웃’ 단계에 놓인, 브랜드 가치로든 시장점유율로든 카드업계 최하위 카드사였다. 2003년에야 제대로 영업을 시작한 현대카드는 2007년부터 총 26차례의 슈퍼콘서트를 열었다.
작년 기준 신용판매 시장점유율은 16.9%로 껑충 뛰었다. KB국민카드를 제치고 카드업계 3위로 올라선 것이다. 차별화된 혜택을 주기 어려운 카드 업계에서 전문경영인이 아닌 정태영 부회장만이 낼 수 있는 지론으로 남다른 ‘고객 경험’을 준 것이 소비자들의 충성심을 만들어냈다.
상황 1 ‘현대차 직원만 쓰는 카드’ 이미지
현대카드가 초창기 ‘현대차 직원만 쓰는 카드’라는 비판을 받은 건 시장점유율이 1.8%에 그쳤을 뿐 아니라 인지도가 그 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회원수는 20만명에 머물렀으며, 워크아웃이 끝난 2003년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후 카드 업계 최초 포인트 선지급 서비스인 현대카드M에 이어 ‘알파벳 카드’를 출시하며 고속성장을 시작했다. 상위권으로 뛰어넘는 단계에서 필요한 건 브랜드였다.
슈퍼콘서트는 정태영 부회장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 슈퍼콘서트의 장점은 세계 최고의 테니스·골프 선수들을 데려오는 ‘현대카드 슈퍼매치’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스포츠는 스폰서를 등에 업고 뛰는 영역이라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스폰서가 쉽다는 게 문제가 됐다. 어느 금융사나 스폰서 방식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계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스포츠와 다른 건 공연에 임할 때 그들의 입김이 세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를 가진 스폰서를 얻어서 공연에 나서지 않는다. 이런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현대카드의 브랜드가 들어가면 독보적인 브랜드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정 부회장과 관계자들의 역발상이었다.
매번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이름은 바뀌지만 ‘현대카드’의 이름은 항상 들어간다. 주목할 부분은 대개 레전드 아티스트보다 현대카드의 이름이 ‘앞’에 나온다는 점이다. 그 때부터 공연에서도 ‘타이틀 스폰서십’이 도입됐다.
상황 2 아티스트들에게 외면받는 한국
영국의 팝페라 그룹 일 디보를 초청했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회는 사실 1회가 아니었다고 한다. 일단 시도하되, 접을 수도 있는 ‘파일럿 테스트’였다. 문제는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티켓 파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는 무조건 흥행력이다. 옆나라 일본은 7회 공연을 해도 항상 티켓이 다 팔렸다. 반면 한국은 공연 시장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아시아 투어에서 배제되는 국가였다. 흥행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현대카드는 비욘세에게 승부를 걸었다. 2회부터 비욘세를 섭외하기 위해 “티켓을 다 팔 때까지 마케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공연업계에서는 드물게 TV광고를 제안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광고로 티켓 파워가 없던 한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윈윈’ 제안이 먹혀들었다고 한다. 예매가 열린 후 마감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이었다.
슈퍼콘서트는 2010년이 분기점이었다. 그해에만 다섯 차례 콘서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스티비 원더가 왔던 11회차 공연은 슈퍼콘서트라는 ‘모듈’이 완전히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가수 중의 가수’ 스티비 원더를 끌어들인 게 컸다. ‘스티비 원더가 참석한 공연’ 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어필하는 효과가 컸다고 한다.
스티비 원더가 아시아에 오는 걸 보기 어려운 이유는 기타리스트 세 명의 동의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침 그해 썸머소닉이라는 일본 팝 페스티벌의 ‘헤드라인’으로 스티비 원더가 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대카드에는 언젠가 무조건 섭외해야할 리스트가 있다. 꼭 그 해에 데리고 오자는 개념이 아니고 수년에 걸쳐 작업하는 아티스트다.
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의 가수만 섭외하는 게 아니다. 보안부터 관객 소품, 음료, 가수의 곡 리스트를 모두 챙긴다. 스티비 원더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당시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와 ‘Lately’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스티비 원더가 준 곡 리스트에는 둘 다 빠져있었던 것. 우여곡절 끝에 곡 리스트를 완전히 바꿨다.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려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얻어낸 관중들의 열광이 아티스트에게는 하나의 레코드로 남는다. 지금 현대카드는 단순히 국내 스폰서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카드가 주도해 레전드 아티스트의 아시아 투어를 짜기도 한다. 콜드플레이가 대표적인 사례다.상황 3 슈퍼콘서트, 수익으로 어떻게 연결하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당연히 현대카드가 단독 타이틀 스폰서다. 공연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도맡아 비용 대부분을 부담하기까지 한다. 회당 나가는 비용도 수십억원대에 달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현대카드도 “수익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현대카드가 수익 대신 주목하는 건 ‘슈퍼콘서트의 팬이 곧 현대카드의 팬이 된다’는 점이다.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을 본 고객은 호주머니에 현대카드를 넣고 다니게 된다. ‘공연장에서의 경험’에 각별히 신경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카드사가 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매일 소비를 하려고 신용카드를 꺼내기 때문이다. 카드를 꺼내서 ‘돈을 써라’라고 비용 마케팅을 할 건가, 아니면 인지도를 높여서 먼저 현대카드의 팬으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 산물이 슈퍼콘서트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사람 위주의 20%를 공략하자는 목표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팬들이 BTS를 키우고 아미가 되듯, 슈퍼콘서트의 팬들도 시니어가 되면 지갑도 자연히 열린다. 역대 슈퍼콘서트 가수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빌리 아일리시가 올해 섭외된 것도 이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아를 드러낸다. “난 2010년에 스티비 원더 콘서트 보고 왔어. 올해는 폴 맥카트니 보려고”라는 표현이 슈퍼콘서트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자신이 세계적인 가수의 공연을 봤다는 걸 자랑삼아 얘기할 수도 있고, 그만큼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의 브랜드를 형성하는 기준점이 됐다. 그렇게 형성된 브랜드 위에서 가격정책이나 판촉 등 마케팅이 이뤄진다. 마케팅의 성과도 브랜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슈퍼콘서트가 보여줬다는 평가다.
박진우 기자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문화마케팅은 크게 “마케팅을 위한 문화”와 “문화를 위한 마케팅”으로 나뉜다. 다시 말해, 기업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활용하면 “마케팅을 위한 문화(culture for marketing)”이고, 최종 마케팅의 대상이 문화 자체이면 “문화를 위한 마케팅(marketing for culture)”이다. 그렇다면, 특별히 “마케팅을 위한 문화” 측면에서 기업이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문화마케팅은 차별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초기 현대카드를 떠올릴 때 현대자동차 외에는 별다른 연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는 현대카드가 광고를 열심히 한다고 쉽게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의 브랜드 스키마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부터 계속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를 통해 비욘세, 빌리 조엘, 스티비 원더, 폴 매카트니, 콜드 플레이, 빌리 아일리시 등의 세계적 팝스타들이 현대카드의 ‘브랜드 스키마(brand schema)’에 자연스럽게 추가되었다. 이는 초기 현대카드의 인지도 상승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카드에 “혁신, 남다름, 최초…” 등의 차별적인 브랜드 스키마를 추가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판단된다.
둘째, 문화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의 이유’를 제공한다. 소비자의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해당 제품이 나에게 가장 큰 효용적 가치(utilitarian value)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해당 제품이 나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가장 잘 정당화해줄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는 곧 마케터들이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제품을 선택할 이유를 먼저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경쟁 브랜드 간 ‘품질 차이’를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신용카드의 경우에도 경쟁사 간의 혜택이 거의 비슷해 특별히 상품 간 차이를 확인하기 힘들다. 이 때 문화마케팅이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비슷한 조건이라면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신용카드가 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문화마케팅은 자사의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제 더 이상 ‘제품’만으로 차별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기업은 문화마케팅을 통해 TV 광고를 활용한 일방향적 메시지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강력한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단, 문화마케팅이 소비자들에게 일회성 이벤트 경험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마케터들이 문화마케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제품과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순간, 그리고 “소비”하는 순간에도 그 메시지가 “일관성 있게” 경험될 수 있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일반적인 기업의 입장에서 ‘마케팅을 위한 문화 활동’인 문화마케팅은 ‘기업이 문화예술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이런 정의에 근거해 문화마케팅을 여러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문화판촉, 문화지원, 문화기업 등이 문화마케팅의 대표적 유형이다. 문화판촉은 문화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거나, 소비자를 설득시켜 구매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문화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 연구는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를 문화판촉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평가했다. 현대카드가 화제성이 높은 공연을 매개로 자사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제고하는 동시에 자사 고객에게 할인혜택과 초청권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화에 관심있는 고객들을 유입하고 충성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문화지원은 문화마케팅 유형 중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마케팅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스폰서십을 말한다. 기업이 직접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술이나 인력, 현물을 지원하는 것이다. 문화기업은 새롭고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을 가리킨다.
문화마케팅도 마케팅인 만큼 성과에 대한 관심이 크지만 일반적인 다른 마케팅과 달리, 직접적 성과보다는 간접적 성과,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 성과가 가능하다는 연구들이 많다.
그러나 마케팅 현장에서 ‘단기 성과’를 도외시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 및 공공기관 등에서 자주 나타나는 ‘핌투’(PIMTOO, please in my terms of office)가 기업에서도 예외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다. 어느 조직이나 최고의사결정권자는 ‘제발 나의 재임 기간 중에’ 성과가 나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슈퍼콘서트로 얻은 마케팅 효과를 보고 받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도록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카드는 소비의 도구이다. 소비를 위해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라는 결제수단을 사용한다. 어떤 카드를 발급받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가지고 싶은 카드’로 현대카드가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에 힘입은 바 크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루어진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그 자체로 '네임드'가 됐다. 아티스트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콘서트장의 변천사를 보면 슈퍼콘서트의 팬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에만 해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만 열리던 슈퍼콘서트는 이제 야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다. 규모를 비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마치 일본을 찾는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도쿄 돔이나 사이마타 돔을 찾는 것과 같은 원리다.
8월15일에도 미국 탑가수 빌리 아일리시(20)가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공연을 했다. 공연의 이름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빌리 아일리시 예매는 20분만에 끝났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아티스트가 정해지면, 슈퍼콘서트의 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소식을 퍼나른다. “슈퍼콘서트 가려고 현대카드를 발급받는다”는 말이 커뮤니티에서 나올 정도다. 슈퍼콘서트 예매를 하려고 현대카드를 쓰는 비중은 2007년 64%에서 2022년 90%로 뛰었다.
결과적으로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의 인지도를 업계 최하위에서 3위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현대카드는 2001년 현대차가 인수할 당시만 해도 ‘워크아웃’ 단계에 놓인, 브랜드 가치로든 시장점유율로든 카드업계 최하위 카드사였다. 2003년에야 제대로 영업을 시작한 현대카드는 2007년부터 총 26차례의 슈퍼콘서트를 열었다.
작년 기준 신용판매 시장점유율은 16.9%로 껑충 뛰었다. KB국민카드를 제치고 카드업계 3위로 올라선 것이다. 차별화된 혜택을 주기 어려운 카드 업계에서 전문경영인이 아닌 정태영 부회장만이 낼 수 있는 지론으로 남다른 ‘고객 경험’을 준 것이 소비자들의 충성심을 만들어냈다.
상황 1 ‘현대차 직원만 쓰는 카드’ 이미지
도전 1 ‘레전드 아티스트’ 앞에 현대카드
현대카드가 초창기 ‘현대차 직원만 쓰는 카드’라는 비판을 받은 건 시장점유율이 1.8%에 그쳤을 뿐 아니라 인지도가 그 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회원수는 20만명에 머물렀으며, 워크아웃이 끝난 2003년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후 카드 업계 최초 포인트 선지급 서비스인 현대카드M에 이어 ‘알파벳 카드’를 출시하며 고속성장을 시작했다. 상위권으로 뛰어넘는 단계에서 필요한 건 브랜드였다.슈퍼콘서트는 정태영 부회장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 슈퍼콘서트의 장점은 세계 최고의 테니스·골프 선수들을 데려오는 ‘현대카드 슈퍼매치’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스포츠는 스폰서를 등에 업고 뛰는 영역이라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스폰서가 쉽다는 게 문제가 됐다. 어느 금융사나 스폰서 방식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계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스포츠와 다른 건 공연에 임할 때 그들의 입김이 세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를 가진 스폰서를 얻어서 공연에 나서지 않는다. 이런 아티스트들의 공연에 현대카드의 브랜드가 들어가면 독보적인 브랜드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정 부회장과 관계자들의 역발상이었다.
매번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이름은 바뀌지만 ‘현대카드’의 이름은 항상 들어간다. 주목할 부분은 대개 레전드 아티스트보다 현대카드의 이름이 ‘앞’에 나온다는 점이다. 그 때부터 공연에서도 ‘타이틀 스폰서십’이 도입됐다.
상황 2 아티스트들에게 외면받는 한국
도전 2 ‘가수 중의 가수’ 스티비 원더에 도전
영국의 팝페라 그룹 일 디보를 초청했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회는 사실 1회가 아니었다고 한다. 일단 시도하되, 접을 수도 있는 ‘파일럿 테스트’였다. 문제는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티켓 파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는 무조건 흥행력이다. 옆나라 일본은 7회 공연을 해도 항상 티켓이 다 팔렸다. 반면 한국은 공연 시장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아시아 투어에서 배제되는 국가였다. 흥행이 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현대카드는 비욘세에게 승부를 걸었다. 2회부터 비욘세를 섭외하기 위해 “티켓을 다 팔 때까지 마케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공연업계에서는 드물게 TV광고를 제안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광고로 티켓 파워가 없던 한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윈윈’ 제안이 먹혀들었다고 한다. 예매가 열린 후 마감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이었다.
슈퍼콘서트는 2010년이 분기점이었다. 그해에만 다섯 차례 콘서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스티비 원더가 왔던 11회차 공연은 슈퍼콘서트라는 ‘모듈’이 완전히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가수 중의 가수’ 스티비 원더를 끌어들인 게 컸다. ‘스티비 원더가 참석한 공연’ 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어필하는 효과가 컸다고 한다.
스티비 원더가 아시아에 오는 걸 보기 어려운 이유는 기타리스트 세 명의 동의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침 그해 썸머소닉이라는 일본 팝 페스티벌의 ‘헤드라인’으로 스티비 원더가 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대카드에는 언젠가 무조건 섭외해야할 리스트가 있다. 꼭 그 해에 데리고 오자는 개념이 아니고 수년에 걸쳐 작업하는 아티스트다.
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의 가수만 섭외하는 게 아니다. 보안부터 관객 소품, 음료, 가수의 곡 리스트를 모두 챙긴다. 스티비 원더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당시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와 ‘Lately’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스티비 원더가 준 곡 리스트에는 둘 다 빠져있었던 것. 우여곡절 끝에 곡 리스트를 완전히 바꿨다.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려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얻어낸 관중들의 열광이 아티스트에게는 하나의 레코드로 남는다. 지금 현대카드는 단순히 국내 스폰서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현대카드가 주도해 레전드 아티스트의 아시아 투어를 짜기도 한다. 콜드플레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황 3 슈퍼콘서트, 수익으로 어떻게 연결하나
도전 3 특별한 경험 ‘지갑내 점유율’ 높인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당연히 현대카드가 단독 타이틀 스폰서다. 공연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도맡아 비용 대부분을 부담하기까지 한다. 회당 나가는 비용도 수십억원대에 달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현대카드도 “수익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현대카드가 수익 대신 주목하는 건 ‘슈퍼콘서트의 팬이 곧 현대카드의 팬이 된다’는 점이다.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을 본 고객은 호주머니에 현대카드를 넣고 다니게 된다. ‘공연장에서의 경험’에 각별히 신경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카드사가 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매일 소비를 하려고 신용카드를 꺼내기 때문이다. 카드를 꺼내서 ‘돈을 써라’라고 비용 마케팅을 할 건가, 아니면 인지도를 높여서 먼저 현대카드의 팬으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 산물이 슈퍼콘서트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사람 위주의 20%를 공략하자는 목표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팬들이 BTS를 키우고 아미가 되듯, 슈퍼콘서트의 팬들도 시니어가 되면 지갑도 자연히 열린다. 역대 슈퍼콘서트 가수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빌리 아일리시가 올해 섭외된 것도 이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를 마케팅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문화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브랜드는 철저히 마케팅과 분리돼야 한다”는 정 부회장의 철학에 따라 만들어진 게 슈퍼콘서트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콘서트로 얻은 마케팅 효과에 대해 수치상으로 보고받은 적도, 물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예매 시작한지 몇 초만에 매진이 됐는가, 관중들은 얼마나 왔는가 정도만 파악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현대카드 실무진도 공연의 퀄리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지금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아를 드러낸다. “난 2010년에 스티비 원더 콘서트 보고 왔어. 올해는 폴 맥카트니 보려고”라는 표현이 슈퍼콘서트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자신이 세계적인 가수의 공연을 봤다는 걸 자랑삼아 얘기할 수도 있고, 그만큼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의 브랜드를 형성하는 기준점이 됐다. 그렇게 형성된 브랜드 위에서 가격정책이나 판촉 등 마케팅이 이뤄진다. 마케팅의 성과도 브랜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슈퍼콘서트가 보여줬다는 평가다.
박진우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문화마케팅은 크게 “마케팅을 위한 문화”와 “문화를 위한 마케팅”으로 나뉜다. 다시 말해, 기업이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문화를 활용하면 “마케팅을 위한 문화(culture for marketing)”이고, 최종 마케팅의 대상이 문화 자체이면 “문화를 위한 마케팅(marketing for culture)”이다. 그렇다면, 특별히 “마케팅을 위한 문화” 측면에서 기업이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문화마케팅은 차별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초기 현대카드를 떠올릴 때 현대자동차 외에는 별다른 연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는 현대카드가 광고를 열심히 한다고 쉽게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의 브랜드 스키마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부터 계속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를 통해 비욘세, 빌리 조엘, 스티비 원더, 폴 매카트니, 콜드 플레이, 빌리 아일리시 등의 세계적 팝스타들이 현대카드의 ‘브랜드 스키마(brand schema)’에 자연스럽게 추가되었다. 이는 초기 현대카드의 인지도 상승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카드에 “혁신, 남다름, 최초…” 등의 차별적인 브랜드 스키마를 추가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판단된다.
둘째, 문화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의 이유’를 제공한다. 소비자의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해당 제품이 나에게 가장 큰 효용적 가치(utilitarian value)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해당 제품이 나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가장 잘 정당화해줄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는 곧 마케터들이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제품을 선택할 이유를 먼저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경쟁 브랜드 간 ‘품질 차이’를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신용카드의 경우에도 경쟁사 간의 혜택이 거의 비슷해 특별히 상품 간 차이를 확인하기 힘들다. 이 때 문화마케팅이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비슷한 조건이라면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신용카드가 더 매력적인 대안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문화마케팅은 자사의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제 더 이상 ‘제품’만으로 차별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기업은 문화마케팅을 통해 TV 광고를 활용한 일방향적 메시지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강력한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단, 문화마케팅이 소비자들에게 일회성 이벤트 경험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마케터들이 문화마케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제품과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소비자들이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순간, 그리고 “소비”하는 순간에도 그 메시지가 “일관성 있게” 경험될 수 있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일반적인 기업의 입장에서 ‘마케팅을 위한 문화 활동’인 문화마케팅은 ‘기업이 문화예술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이런 정의에 근거해 문화마케팅을 여러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문화판촉, 문화지원, 문화기업 등이 문화마케팅의 대표적 유형이다. 문화판촉은 문화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거나, 소비자를 설득시켜 구매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문화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 연구는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를 문화판촉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평가했다. 현대카드가 화제성이 높은 공연을 매개로 자사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제고하는 동시에 자사 고객에게 할인혜택과 초청권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화에 관심있는 고객들을 유입하고 충성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문화지원은 문화마케팅 유형 중 가장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마케팅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스폰서십을 말한다. 기업이 직접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술이나 인력, 현물을 지원하는 것이다. 문화기업은 새롭고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을 가리킨다.
문화마케팅도 마케팅인 만큼 성과에 대한 관심이 크지만 일반적인 다른 마케팅과 달리, 직접적 성과보다는 간접적 성과,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 성과가 가능하다는 연구들이 많다.
그러나 마케팅 현장에서 ‘단기 성과’를 도외시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 및 공공기관 등에서 자주 나타나는 ‘핌투’(PIMTOO, please in my terms of office)가 기업에서도 예외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다. 어느 조직이나 최고의사결정권자는 ‘제발 나의 재임 기간 중에’ 성과가 나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슈퍼콘서트로 얻은 마케팅 효과를 보고 받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단기 성과에 급급하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도록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카드는 소비의 도구이다. 소비를 위해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라는 결제수단을 사용한다. 어떤 카드를 발급받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가지고 싶은 카드’로 현대카드가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에 힘입은 바 크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루어진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