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 미술계의 최대 화제는 두 명의 여성 거장이다. ‘거미 여인’으로 불리며 현대미술계의 아이콘으로 남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와 독일이 낳은 세계적 사진가 칸디다 회퍼(78)다. 부르주아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역사적 미술관 그로피우스바우에서, 회퍼는 독일 사진박물관에서 각각 대규모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동시대를 산 노년의 여성과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애호가들로 연일 붐비고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1997) /김보라 기자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1997) /김보라 기자
엄마에겐 평생 바늘과 실이 있었다. 양탄자 등 직물 수리를 가업으로 하던 집안의 딸은 그런 엄마를 매일 도왔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질렀고, 엄마는 이를 침묵했다. 얼마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거미는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도구였다. 엄마는 거미처럼 끊임없이 실을 뽑아내 가족을 지키고 자신을 희생했다. 엄마를 은유한 대형 청동 거미 조각 ‘마망’은 세계 현대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평생 뉴욕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하다 70세가 넘어서야 시대의 아이콘이 된 프랑스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이야기다.

○가장 깊은 상처를 다시 꿰매다

다시 바늘로 돌아간 90세 거미 여인
베를린 그로피우스바우 미술관엔 지금 부르주아가 99세 작고 전까지 말년에 작업한 미공개 작품들로 가득하다. ‘거미 여인’으로 불린 그는 인생의 끝에서 오히려 바늘을 들었다. 실로 직조하고, 천으로 짜깁기한 텍스타일 작품을 수없이 낳았다. 마치 그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전시의 제목은 ‘The Woven Child(바느질한 아이)’. 런던 테이트모던, 도쿄 모리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등을 장악한 초대형 거미 조각 ‘마망’의 압도적 스케일 뒤에 가려져 있던 섬세하고 아름다운 텍스타일 작품들이 한곳에 모인 전시다.

전시장엔 유독 백발의 여성이 많았다.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연민과 회고가 교차하는 듯 보였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가장 어두웠던 유년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다시 꿰매고 자르면서 수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목발을 짚고 의족을 찬 남자, 붕대를 감고 키스하는 연인, 가슴에서 실을 뽑아내는 헝겊 인형, 어린 시절 살던 집에 걸린 잠옷, 속옷이 매달려 있는 동물의 뼈 등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과 화해의 과정이 끝까지 그의 잠재의식에 남아 있었다는 증거다.

○“거미는 엄마다. 나는 엄마다”

그의 손끝에서 촘촘하게 바느질된 헝겊들은 색색의 탑을 쌓기도 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냈다. 키가 140㎝가 되지 않던 단신의 그는 평생 남성성에 대한 복수, 여성성에 대한 추앙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위로했지만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는 것엔 극구 반대했다. 어떤 사상으로 묶이는 것도 거부했다.

“나는 아는 것에 관해서 얘기할 뿐이다. 내가 여자기 때문에 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여성’을 위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에게 예술은 카타르시스다.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베를린=김보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