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만에 돌아온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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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해외로 반출됐던 조선 후기의 해시계 ‘일영원구(日影圓球)’(사진)가 13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영원구는 지구본을 닮은 모양의 휴대용 해시계다. 이런 종류의 조선시대 시계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일영원구를 낙찰받아 가져왔다고 18일 밝혔다. 일영원구의 높이는 23.8㎝, 구체 지름은 11.2㎝로 소형 지구본과 비슷한 크기다. 재질은 동과 철. 1890년 7월 고종의 호위무사이던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제작했다고 유물 한쪽에 적혀 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학계에 존재가 알려진 적이 없는 희귀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1890년은 서양에서 처음으로 회중시계가 나온 지 380년, 스위스의 시계회사 파텍필립이 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지 22년이 지난 시점이다. 조선의 휴대용 해시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첫 번째로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금속 받침판의 꽃잎 모양, 은으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상감입사기법으로 표현한 배 모양과 글자 등이 당시의 수준 높은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세계 어디서나 시간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 ‘앙부일구’는 태양의 그림자를 만드는 뾰족한 막대인 영침(影針)이 고정돼 있어 특정 지역에서만 시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영원구는 장치만 조정하면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신뢰성이다. 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는 “해만 나면 항해 중인 배를 비롯해 어디서나 오차 없이 정확한 시간을 볼 수 있다”며 “우리만의 과학·공예 기술이 담긴 ‘명품’ 해시계”라고 평가했다.
일영원구가 해외로 나간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말 일영원구가 미국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를 거쳐 유물을 낙찰받았다. 일영원구의 실물은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환수문화재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9월 2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일영원구를 낙찰받아 가져왔다고 18일 밝혔다. 일영원구의 높이는 23.8㎝, 구체 지름은 11.2㎝로 소형 지구본과 비슷한 크기다. 재질은 동과 철. 1890년 7월 고종의 호위무사이던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제작했다고 유물 한쪽에 적혀 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학계에 존재가 알려진 적이 없는 희귀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1890년은 서양에서 처음으로 회중시계가 나온 지 380년, 스위스의 시계회사 파텍필립이 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지 22년이 지난 시점이다. 조선의 휴대용 해시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첫 번째로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금속 받침판의 꽃잎 모양, 은으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상감입사기법으로 표현한 배 모양과 글자 등이 당시의 수준 높은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세계 어디서나 시간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 ‘앙부일구’는 태양의 그림자를 만드는 뾰족한 막대인 영침(影針)이 고정돼 있어 특정 지역에서만 시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영원구는 장치만 조정하면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신뢰성이다. 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는 “해만 나면 항해 중인 배를 비롯해 어디서나 오차 없이 정확한 시간을 볼 수 있다”며 “우리만의 과학·공예 기술이 담긴 ‘명품’ 해시계”라고 평가했다.
일영원구가 해외로 나간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말 일영원구가 미국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를 거쳐 유물을 낙찰받았다. 일영원구의 실물은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환수문화재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9월 2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