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학·경제·인문 '융합인재' 키운다
'전공 벽' 허물어 입시 파격 실험

서울대 경제학부에 복수전공생으로 뽑히는 학생 중 자연대·공대 학생 비율은 5%가 되지 않는다. 전체 서울대 정원 중 자연대·공대생이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적은 수치다.

경제학 복수전공이 이공계생들에게 인기가 없어서는 아니다. 경제학은 문·이과 상관없이 최고 인기 복수전공으로 꼽힌다. 배우려는 이공계생은 많지만 입학할 때부터 갈라놓은 ‘전공의 벽’에 막혀 경제학을 공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는 학점 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 복수전공생을 뽑는 탓에 경제학부에 진입하려면 평점이 4.3점 만점에 최소 4.1을 넘어야 한다. 인문계열보다 학점을 낮게 주는 경향이 있는 자연대·공대 학생들은 이 학점 기준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7개 학과 합친 ‘스쿨 오브 컴퓨팅’ 도입

서울대는 지난달 이런 ‘전공의 벽’을 허물겠다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마련했다. 경직된 전공 때문에 전공별 학생 수가 사회 수요와 맞지 않고,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전공을 공부하기도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18일 본지가 입수한 서울대 발전계획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가칭 ‘스쿨 오브 컴퓨팅(School of Computing)’을 신설하는 방안이 담겼다. 지금은 전공 칸막이로 막혀 있는 공대 전기정보공학부와 컴퓨터공학부, 연합전공 인공지능, 연합전공 인공지능반도체공학, 협동과정 인공지능전공 등을 학부 차원에서 연결한다는 그림이다. 보고서는 “직접적인 정원 증대 없이 디지털 관련 학부 전공자 수를 늘리고, 기술적·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직된 전공 구분을 없애기 위해 입시 제도에도 변화를 준다. 학과별로 정원을 나눠 뽑는 모집단위도 없애고, 어느 학과에 지원하려면 어느 과목을 치러야 한다는 문·이과별 지원자격 구분도 폐지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전공 간 벽을 치고 학생을 선발한다. 예를 들어 2023학년도 수시 일반전형은 국어국문학과에서 9명, 수리과학부에서 16명을 뽑겠다고 정해놓고, 학과별로 지원받아 학생을 뽑는다. 어떤 학과에 지원하는지에 따라 응시할 수능 과목도 다르다. 인문대·사회과학대 등 문과계열 학과에 지원하려면 제2외국어나 한문 시험을 반드시 봐야 하고, 자연대·공대 등 이공계 학과에 지원하려면 과학탐구를 쳐야 한다. 이렇게 특정 전공으로 입학하고 나면 학과를 바꾸기는 어렵다. 이런 구분 자체를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전공 필수 소양 평가 못해” 우려도

전공 제도는 경직돼 있지만, 전공 밖의 공부를 하려는 학생 수요는 폭발하고 있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은 절반에 가까운 재학생이 인문대·사회대 등 문과 출신이다. 차상균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은 “동양사학과·경영학과·언론정보학과 등 다양한 문과생이 진학한다”며 “역사학과 출신이라면 방대한 사료라는 데이터를 다루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식”이라고 했다.

다만 학과 구분 없이 학생을 뽑게 되면 특정 학문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이 부족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모집단위를 폐지하면서 문·이과별 지원 자격까지 없앤다면 입학시험이 전체적으로 쉬워질 수도 있다”며 “예를 들어 통계학을 전공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수리 능력, 영문학에 필요한 텍스트 해석 능력 등을 따져서 선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는 학생이 재학기간에 전공을 자유롭게 바꾸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미 추진하고 있는 관악 기숙대학(RC·Residential College)을 본격 도입해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 간 교류를 늘리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밖에 긴 겨울방학을 없애고 9∼11월, 12∼2월, 3∼5월에 진행되는 3개 정규 학기로 학사 일정을 바꾸는 방식도 검토 중이다.

중장기계획에 언급된 과제들은 당장 시행은 못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서울대가 강도 높게 시도했던 시흥캠퍼스 기숙대학도 2007년 발표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에서 처음 언급됐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