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약 6조3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약 6조3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전기차 패권 싸움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중국의 전기차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법 조항을 넣은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같은 미국의 법안에 애꿎은 국내 완성차 기업이 피해를 보게 됐다는 점이다.

20일 외신에 따르면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의 인터넷판 환구망은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에 대해 "민주당이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카드로서 전기차 보조금의 경우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고 보도했다.

인플레 감축법에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약 526만 원), 신차에 최대 7500달러(약 985만 원)를 세액공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단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특히 중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미국 혹은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원료의 비율이 총 40%를 충족해야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 2024년부터는 해마다 10%포인트씩 상향, 2027년에는 이 비율이 80%가 돼야 한다.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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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신감?..."전기차 70% 인센티브 못 받아"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을 중국은 비판하고 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양새다. 현재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이 단시간에 미국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깔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양극재와 음극재 생산량의 중국산 비중이 각각 70%, 85%에 달한다.

환구망은 "(미국 인플레 감축법의) 자동차 배터리에 대한 주요 원자재 구매 규정이 너무나 공격적이어서 전기차 약 70%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완성차업계도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다. 제너럴모터스(GM), 토요타,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계가 속한 자동차혁신연합(AIV)의 존 보젤라 회장은 현재 미국 내 판매되는 72개 전기차 모델 중 약 70%가 세액공제 대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2030년까지 전기 자동차 판매를 전체 절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내수 시장 성장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점도 중국으로선 큰 강점이다. 미국이 인플레 감축법을 내놓자 중국의 2인자 리커창 총리는 비야디의 광둥성 선전 본사를 찾아 중국의 전기차 생산과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중국 공안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등록된 전기차는 220만9000대로 전년 동기(110만6000대)보다 두 배로 늘어나 사상 최고 증가율을 나타냈다.

이러한 내수 판매에 힘입어 중국의 전기차 글로벌 점유율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기차 점유율 2위는 비야디(BYD)로 11.2%를 차지, 1위 테슬라(15.9%)를 바짝 뒤 쫓고 있다. 3위는 상하이자동차와 GM의 중국 합작사 SAIC-GM-Wuling(6.8%)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배터리 원자재 자체가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비율이 가장 높고, 원자재는 물론이고 양극에 들어가는 전구체 등을 중국이 거의 다 만든다. 환경 오염에 관한 부분도 선진국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중국에 의존하는 이유는 이런 여러 가지 때문이다. 인플레 감축법 자체가 정치적 논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국 업계도 불이익을 많이 받는다는 측면에선 '악법'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 아이오닉5. 사진=현대차 제공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 현대차와 기아

당장 피해를 보는 건 국내 완성차 업계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으로 미국 시장의 주력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가 대당 100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다.

우선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기존 생산라인에 3억 달러(약 3600억원)를 투자해 올해 11월께 전기차 GV70을 생산할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다. 물량이 워낙 적어 미국 내 전기차 수요를 맞추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5월 미국 조지아주에 6조3000억원을 들여 전기차 공장을 짓는 게 그나마 현재로서 확실하게 언급할 수 있는 대응책. 그러나 2025년 완공 예정이라 최소 3년간은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인플레 감축법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불이익을 받는 나라가 됐다"고 평가하며 "이 법은 상원에서도 겨우 통과된 법이라 미국 내에서도 반대하는 단체가 많다. 미국의 반대 세력을 활용해 (인플레 감축법을) 지연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 아니겠느냐"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그는 "아이오닉5나 EV6는 미국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다. 2025년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건설을 반년~1년가량 당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해외 생산을 위해 노조와 합의를 해야 하는데, 이 사안을 빨리 해결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