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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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명분, 상호 관용이 정치판에서 소멸했다. 요즘 정치학자들끼리 모이면 '왜 내가 이 학문을 했을까'하는 자괴감 섞인 발언들을 종종 한다. 결국 뿌리 없는 정당 시스템이 문제다.
한국정치학회장과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장 등을 역임한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제 1·2·3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국회를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전했다. 양 교수는 "지금 국가 경제가 어떤 위기인데 국회가 자기네들 당 안팎으로 정쟁하기 바쁜지 보기가 매우 불편하다"며 "국회의원 월급은 혈세다"고 직격했다.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박지현 민주당 전 비대위원장의 퇴장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위기일수록 젊고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나와줘야 하는데, 기대를 한껏 받았던 이들의 마지막 모습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실패는 각 정당의 실패다. 역사 짧은 정당들이 통합된 비전, 당원 시스템 등을 제대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대남 vs 이대녀, 공동체의 손해"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양 교수는 이 전 대표와 박 전 위원장에 등장과 퇴장에 대해 "전체나 어떤 방향성보다 개인 자체만 부각됐다"고 꼬집었다. 이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사회경제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취업이 어렵고, 먹거리가 없기 때문에 남은 파이 조각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이라면서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외부 요인을 탓하면서 자신을 부각하려는 경향성이 요즘 '젊치인'(젊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이런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MZ세대의 특징을 강화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과거에는 문제가 있으면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토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SNS에 글 하나 올려 '좋아요' '싫어요'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평가를 받게 된다"면서 "정서적 교감은커녕 생각의 발전이 없다. 그러고 너도나도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뭉쳐서 교조주의가 발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찬성과 반대도 강도(強度)라는 게 있다. 다양한 의견이 수렴돼야 정치와 사회가 건강해진다. 하지만 SNS 시대에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진짜 진실은 외면하고 내가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여기며 확증 편향성을 만든다. 자신이 믿는 걸 남한테 또 확인받으면서 그 편향을 강화시킨다"면서 "그러면서 극우 커뮤니티인 일베의 사용자들은 일베에서만 놀고, 이재명 의원 지지자들인 개딸(개혁의딸)들은 개딸들끼리만 어울리게 되는 경향이 더 세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되는 사람은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 강성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회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더 단절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이대남'과 '이대녀'가 서로 갈라치는 식으로 정치가 이어지면, 결국 그 손해는 공동체 모두가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결혼도 않고 아이도 안 가지는 인구 소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권에서 '갈라치기' 전략은 진정으로 지양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이 전 대표에 이르기까지 갈라치기 전략이 매우 잘 쓰여왔는데, 상당히 근시안적인 전략"이라면서 "그 전략이 아니었다면 민주당은 대통령을 2번 연이어 배출했 수도 있고, 이 전 대표의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을수도 있다"고 가정했다.

"물 고이면 간판 바꾸는 정당정치 그만"

양 교수는 대중들이 원하는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당원 시스템을 안착, 정당의 역사를 쌓아나가야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이 전 대표와 박 전 위원장의 공통점으로 정당 정치 경험의 부재를 언급했다. 그는 "결국 기성 정치인이 꽂아놓은 인물인 셈"이라면서 "그만큼 한국 '젊치인'이나 새로운 인물이 정치에 발을 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만큼 좋은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같은 경우는 이런 사례가 드물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나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만 해도 모두 밑바닥부터 정당 정치를 해서 국가원수까지 된 사람들이다. 그렇게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민주적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단순히 인물로만 평가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와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권의 경우 다양한 정당 중 자신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문화가 활발하다"면서 "우리도 그렇게 각 정당들이 당원들을 모아서 그중 리더를 뽑는 정당 시스템을 토착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물이 고이듯 당에 한계가 왔을 때 한국 정당들이 매번 '간판'을 바꿔온 점도 지적했다. 그는 "정당 역사가 70년인데 정당들 평균 수명은 5년도 안 된다"면서 "미국 공화당의 역사는 160년이 넘고, 일본의 자유민주당만 해도 60년이 더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유지할 만큼의 단일한 가치나 시스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당장 닥친 정치 현안만 생각하지 말고 정당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