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찬스' 걸렸는데 "난 몰랐다"는 직원…해고 못하는 이유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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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한 것…난 몰랐다" 주장 빈번
직원 본인의 '부정행위' 아니라 징계 어려워
채용비리 해고 규정 미리 갖춰 놔야
직원 본인의 '부정행위' 아니라 징계 어려워
채용비리 해고 규정 미리 갖춰 놔야
아버지의 채용 청탁이 확인된 은행직원이 "청탁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다면 해고가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최근 우리은행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이같이 판단했다.
연루된 임원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최종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인사상무는 "과거 기업 지점장을 할 때 알게 된 거래처 사장이 '딸(A)이 (입사 원서를) 넣었다. 금융고시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연락을 줬다"고 진술했다. 채용 팀장도 "(인사상무의 보고를 받은) 은행장의 추천 없이는 (합격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회사는 부정 채용이 확인된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했지만, A만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수차례 걸친 면담에서도 “채용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나름 준비해서 합격했다고 생각했다”며 "나 혼자 짊어지고 나가라는 것이냐"라며 사직을 거부했다.
결국 은행은 A를 면직(해고)했다. 이에 A는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가 이를 인용하자 은행 측이 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은행은 "A가 부정입사자라는 것은 은행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도 확인됐다"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A가 "나는 몰랐다"고 주장하자 우리은행도 A를 '징계해고'가 아닌 ‘명백한 퇴직사유가 발생했을 때 퇴직시킬 수 있다'는 기타 면직 규정을 근거로 해고했다. 징계해고와 달리 통상해고의 경우엔 근로자의 귀책사유가 없어도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유지하기 곤란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본인이 아닌 제3자의 비위행위까지 '명백한 퇴직사유'로 볼 수는 없다"며 "A를 해고하려면 A에게 업무상 중대한 고의·과실 등 귀책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A에 대한 해고가 정당한 이유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형사판결에서 A가 서류 전형 불합격권이었던 점, 합격에 인사담당 상무가 개입돼 있는 점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아버지가 인사상무에게 지원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 A가 직접 개입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아버지가 딸의 지원사실을 알렸다는 점만으로 딸인 A 본인에게 업무상 중대한 고의·과실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이지만, 일차적으로는 채용절차를 적정하게 관리하지 못한 은행의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당장은 속이 시원했을지몰라도 노동법 전문가들은 "법적으로는 무리일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해 왔다. 해고 근거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사담당자가 이런 복잡한 상황에 빠지기 싫다면, 미리 면직이나 해고 규정을 정비해서 "채용비리가 적발되는 경우 합격을 취소한다"는 등의 면직규정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실제로 대법원은 2020년 선고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 “지원자와 밀접한 아버지의 청탁으로 불공정하게 선발된 경우라면, 지원자의 '채용에 관한 부정'이 발견된 것”이라며 회사의 직권면직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강원랜드는 인사 규정에 ‘임용 이전의 채용 과정에서 부정 사실이 발견됐을 때에는 합격 또는 임용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기업이 평소에 채용과정의 비리행위가 채용 후 발견된 경우 채용된 직원에 대한 인사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채용비리가 있었음이 밝혀져도 채용된 직원이 몰랐다고 주장할 때 인사조치가 어려워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원랜드 사건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상급심에서 결론이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최근 우리은행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이같이 판단했다.
"아빠가 청탁한지 몰랐다…내가 노력해서 된 줄"
A는 2016년 하반기 신입 공채에 합격해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2017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A 등 신입사원 채용에 부정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대표이사, 인사 상무, 인사 부장, 채용 팀장 등이 서류전형 점수 미달로 불합격 대상인 지원자를 합격 처리하거나, 면접 시험 불합격권 지원자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 처리한 사실이 드러났다.연루된 임원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최종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인사상무는 "과거 기업 지점장을 할 때 알게 된 거래처 사장이 '딸(A)이 (입사 원서를) 넣었다. 금융고시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연락을 줬다"고 진술했다. 채용 팀장도 "(인사상무의 보고를 받은) 은행장의 추천 없이는 (합격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회사는 부정 채용이 확인된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했지만, A만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수차례 걸친 면담에서도 “채용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나름 준비해서 합격했다고 생각했다”며 "나 혼자 짊어지고 나가라는 것이냐"라며 사직을 거부했다.
결국 은행은 A를 면직(해고)했다. 이에 A는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가 이를 인용하자 은행 측이 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은행은 "A가 부정입사자라는 것은 은행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도 확인됐다"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본인의 '부정행위' 아니라 징계 쉽지 않아
근로기준법 등에 따르면 근로자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해고사유'에 해당하고 △정당한 이유(근로자의 중대한 고의·과실)도 있어야 한다.A가 "나는 몰랐다"고 주장하자 우리은행도 A를 '징계해고'가 아닌 ‘명백한 퇴직사유가 발생했을 때 퇴직시킬 수 있다'는 기타 면직 규정을 근거로 해고했다. 징계해고와 달리 통상해고의 경우엔 근로자의 귀책사유가 없어도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유지하기 곤란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본인이 아닌 제3자의 비위행위까지 '명백한 퇴직사유'로 볼 수는 없다"며 "A를 해고하려면 A에게 업무상 중대한 고의·과실 등 귀책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A에 대한 해고가 정당한 이유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인사담당자들에 대한) 형사판결에서 A가 서류 전형 불합격권이었던 점, 합격에 인사담당 상무가 개입돼 있는 점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아버지가 인사상무에게 지원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 A가 직접 개입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아버지가 딸의 지원사실을 알렸다는 점만으로 딸인 A 본인에게 업무상 중대한 고의·과실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이지만, 일차적으로는 채용절차를 적정하게 관리하지 못한 은행의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채용비리 해고 규정, 미리 정비 해놔야
문재인 정부는 2017년부터 공공기관 채용비리 척결에 나섰다. 기재부도 이에 따라 "부정합격자는 검찰 수사 끝에 기소만 되면 즉시 '퇴출'한다"는 지침을 내렸다.당장은 속이 시원했을지몰라도 노동법 전문가들은 "법적으로는 무리일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해 왔다. 해고 근거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사담당자가 이런 복잡한 상황에 빠지기 싫다면, 미리 면직이나 해고 규정을 정비해서 "채용비리가 적발되는 경우 합격을 취소한다"는 등의 면직규정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실제로 대법원은 2020년 선고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 “지원자와 밀접한 아버지의 청탁으로 불공정하게 선발된 경우라면, 지원자의 '채용에 관한 부정'이 발견된 것”이라며 회사의 직권면직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강원랜드는 인사 규정에 ‘임용 이전의 채용 과정에서 부정 사실이 발견됐을 때에는 합격 또는 임용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기업이 평소에 채용과정의 비리행위가 채용 후 발견된 경우 채용된 직원에 대한 인사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채용비리가 있었음이 밝혀져도 채용된 직원이 몰랐다고 주장할 때 인사조치가 어려워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원랜드 사건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상급심에서 결론이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