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등 해외로 떠났던 미국 기업들이 본국으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올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으로 늘어나는 미국 내 일자리는 35만 개에 달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우크라이나전쟁 등 예기치 못한 변수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책이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 노동시장, 리쇼어링으로 호황

美, 리쇼어링發 새 일자리 35만개 늘어난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쇼어링 로비단체인 리쇼어링이니셔티브 자료를 인용해 미국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올해 34만8493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26만5337개)보다 31% 이상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다.

2010년부터 11년 동안 미국 기업들이 떠나온 나라는 중국(44%) 멕시코(21%) 캐나다(10%) 인도(5%) 일본(5%) 등의 순으로 추정된다고 리쇼어링이니셔티브는 전했다.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수십 개 기업이 미국에 신규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반도체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등에 400억달러(약 53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 배터리 소재업체인 어센드엘리먼츠는 10억달러를 투입해 켄터키주에 리튬이온 배터리 소재 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올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기업들이 리쇼어링을 언급한 횟수는 3년 전보다 12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전쟁으로 유턴

글로벌 공급망을 마비시킨 코로나19 사태 이후 리쇼어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시설을 전부 폐쇄하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등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되자 미국 기업들이 자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 대만의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리쇼어링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WSJ는 “지난 30년간 미국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과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며 세계화의 수혜를 봤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많은 미국 경영인이 리쇼어링을 고려하게 됐다”고 했다.

일자리와 공급망 확충을 유도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도 영향을 끼쳤다. 이달 최종 통과한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현지 투자와 생산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탄소 저감책을 시행하고 있어 공급망 간소화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이런 흐름에 리쇼어링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세계화는 후퇴하고 있다”고 리쇼어링 증가를 예상했다.

향후 자동화 설비가 늘어남에 따라 일자리 증가폭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업들이 미국인의 높은 임금을 부담하는 대신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 자동화발전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북미 지역 기업이 주문한 로봇은 1만1595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리 모저 리쇼어링이니셔티브 회장은 “기업들은 미국으로 돌아오면 3~5배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며 “이들은 자동화 설비를 갖출 것”이라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