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장질서 흔드는 노동 판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포스코 하청근로자 직접 고용 등
원청 정규직과 형평성 논란 키워
노·사, 노·노갈등 증폭 우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원청 정규직과 형평성 논란 키워
노·사, 노·노갈등 증폭 우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로마제국이 무너진 이유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일부 학자는 로마 시민권을 속주(屬州)의 모든 자유민에게 나눠 준 ‘안토니우스 칙령’을 결정적 한 방으로 꼽고 있다. 이 조치가 로마제국을 지켜온 시민 정신을 쇠퇴시켰기 때문이다.
시민권을 얻으려고 로마제국을 위해 열심히 싸워온 속주 사람들은 그 동기를 잃었고, 기존 로마 시민도 애써 시민의 의무를 다할 의욕을 잃었다. ‘안토니우스 칙령’으로 로마 시민권은 열심히 노력해 얻는 ‘성과와 보상’이 아니라 공짜로 주어지는 ‘기득권’이 돼버렸다. 이로 인해 로마제국을 지탱해 온 군인·의사·교사 지망자가 급격히 줄었고, 속주 사람들에게 거두던 속주세도 걷지 못해 재정이 나날이 악화했다. 이 떄문에 로마제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근 우리 주변에도 마치 안토니우스 칙령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진짜 사장 나오라’며 중소협력사 직원들이 원청 사업장을 불법 점거하고 농성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또 얼마 전 대법원은 ‘지휘명령, 고용 간주’라는 복잡한 용어와 법리로 포스코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으로 봤다. 사내 하청 근로자를 원청인 포스코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이 밖에 중앙노동위원회도 CJ대한통운, 현대제철 사건에서 기존 판례와 정부 해석과는 달리 ‘원청이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며 원청을 단체교섭 당사자인 사용자로 인정했다.
이처럼 계약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오랜 원·하청, 협력사 관계를 깨고 이뤄진 최근 판결·판정은 시장경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 협력사 직원은 협력사에 채용된 근로자일 뿐이며 그것이 계약 내용이다. 원청이 잘나가는 대기업이라도 그들과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제 원청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협력사 직원의 사용자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하청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원·하청 간 불합리한 임금 격차는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똑같은 대우를 하기 위해 ‘대기업이 채용하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해법이다.
대법원 판결로 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라고 강제하면 근속·급여·복지·직무 조정 등에서 원청 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를 비롯한 여러 난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난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노·사 갈등뿐만 아니라 노·노 갈등까지 증폭될 것이 자명하다. 또 하도급을 통한 생산 방식을 가진 자동차·철강·조선을 비롯한 제조업체와 건설업체들은 ‘직고용 비용 쇼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약 27%가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일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청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인건비를 부담할 것으로 우려된다. 사실상 산업 현장에는 도급(하청)이 금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 생태계 전반에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고 우리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다수 청년이 바늘구멍보다 더 좁아진 대기업 취업 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노력의 대가로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다. 그런데 단지 협력사 근로자라는 이유로 대기업에 직접 고용하라는 것은 자신들에게만 안토니우스 칙령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대법원은 지난 5월 기업들이 정년 60세 법제화의 한 대응 수단으로 활용하던 임금피크제가 나이를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후 상당수 기업이 소송 대란에 휩싸였다. 이제 기업은 과거에 벌어진 일과 앞으로 발생할 일 모두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제라도 사법부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노동 관련 재판에서 산업 생태계 변화, 우리 노동시장 현실 등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기업을 고달프게 하지 않는 합리적인 판결을 해주길 기대한다.
시민권을 얻으려고 로마제국을 위해 열심히 싸워온 속주 사람들은 그 동기를 잃었고, 기존 로마 시민도 애써 시민의 의무를 다할 의욕을 잃었다. ‘안토니우스 칙령’으로 로마 시민권은 열심히 노력해 얻는 ‘성과와 보상’이 아니라 공짜로 주어지는 ‘기득권’이 돼버렸다. 이로 인해 로마제국을 지탱해 온 군인·의사·교사 지망자가 급격히 줄었고, 속주 사람들에게 거두던 속주세도 걷지 못해 재정이 나날이 악화했다. 이 떄문에 로마제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근 우리 주변에도 마치 안토니우스 칙령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진짜 사장 나오라’며 중소협력사 직원들이 원청 사업장을 불법 점거하고 농성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또 얼마 전 대법원은 ‘지휘명령, 고용 간주’라는 복잡한 용어와 법리로 포스코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으로 봤다. 사내 하청 근로자를 원청인 포스코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이 밖에 중앙노동위원회도 CJ대한통운, 현대제철 사건에서 기존 판례와 정부 해석과는 달리 ‘원청이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며 원청을 단체교섭 당사자인 사용자로 인정했다.
이처럼 계약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오랜 원·하청, 협력사 관계를 깨고 이뤄진 최근 판결·판정은 시장경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 협력사 직원은 협력사에 채용된 근로자일 뿐이며 그것이 계약 내용이다. 원청이 잘나가는 대기업이라도 그들과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제 원청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협력사 직원의 사용자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하청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원·하청 간 불합리한 임금 격차는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똑같은 대우를 하기 위해 ‘대기업이 채용하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해법이다.
대법원 판결로 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라고 강제하면 근속·급여·복지·직무 조정 등에서 원청 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를 비롯한 여러 난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난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노·사 갈등뿐만 아니라 노·노 갈등까지 증폭될 것이 자명하다. 또 하도급을 통한 생산 방식을 가진 자동차·철강·조선을 비롯한 제조업체와 건설업체들은 ‘직고용 비용 쇼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약 27%가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일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청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인건비를 부담할 것으로 우려된다. 사실상 산업 현장에는 도급(하청)이 금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 생태계 전반에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고 우리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다수 청년이 바늘구멍보다 더 좁아진 대기업 취업 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노력의 대가로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다. 그런데 단지 협력사 근로자라는 이유로 대기업에 직접 고용하라는 것은 자신들에게만 안토니우스 칙령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대법원은 지난 5월 기업들이 정년 60세 법제화의 한 대응 수단으로 활용하던 임금피크제가 나이를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후 상당수 기업이 소송 대란에 휩싸였다. 이제 기업은 과거에 벌어진 일과 앞으로 발생할 일 모두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제라도 사법부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노동 관련 재판에서 산업 생태계 변화, 우리 노동시장 현실 등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기업을 고달프게 하지 않는 합리적인 판결을 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