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실 칼럼] 은퇴한 배우자에게 힘을 주는 말


더위가 가시고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접어드는 시점이다. 이처럼 1년에 사계절이 존재하듯이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고 주장한 학자가 있다. 레빈슨이라는 학자에 의하면 인간발달의 전 생애를 4개로 나눈다. 성인 이전 시기, 성인전기, 성인 중기인 중년 그리고 성인 후기 즉, 노년기다. 레빈슨은 중년기를 가을, 노년기를 겨울이라는 계절로 비유를 했다.

인생의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중년과 노년에는

인생의 가을인 중년기나 인생의 겨울인 노년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은퇴 등으로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배우자를 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럴 경우에 상대의 말 한마디로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은퇴는 처음 맞이하는 경험이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찾아오되 개인차가 크다. 특히 오직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오다 개인 자신을 위한 삶을 대비 못한 경우에는 은퇴를 맞이하면서 마음의 홍역을 심하게 앓게 된다. 특히 정년퇴직이 아니라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은퇴를 하게 된 경우에는 마음의 상처는 매우 깊고 크다. 그래서 배우자의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는 상당히 무겁다. 은퇴 후 부부관계의 기본은 각자의 행동에 토를 달기보다는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은퇴한 직후에는 그래도 배우자가 성심을 다해 신경을 쓰지만

평생을 직장에서 가족을 위해 고생한 배우자가 은퇴직후 상심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축 처진 어깨로 기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반찬도 더 신경 써서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 종일 함께 하게 되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삼시세끼를 차려야 하는 배우자가 지치게 된다.

은퇴한 배우자에게 어떤 말들이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될까?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당신은 집 말고 나갈 데가 그렇게 없어? 오라는 데가 하나도 없어? 하루 세끼 꼭 집에서 밥을 먹어야 겠어? 당신도 이제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거 아냐? 등등 특히 은퇴한 후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집안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경우에는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은퇴한 부부가 제2의 인생을 찾아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가족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제일 중요하다. 내 주변에 은퇴 후에도 오히려 더 부부애가 좋아지는 분들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퇴직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은퇴를 하고 나면 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가족이 해주는 한마디가

자신의 아이들이 직업 없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를 혹시라도 부끄러워할까봐 위축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가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기도 한단다. 하지만 어깨는 시간이 갈수록 내려가고 힘이 빠진다. 그럴 때 그래도 가장 힘을 주는 것은 가족의 말 한마디라고 한다.“그동안 당신 참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라는 말 한마디가 어깨를 펴게 한다. 그리고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아이들이 어느새 커서 “이제부터 저도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 테니까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하면 마음 한 켠이 저리도록 행복해진다고 한다.

은퇴 후 찾아오는 우울감은 극복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는데

은퇴 후 자신이 직장을 다닐 때와는 다르게 대우하는 가족들의 사소한 행동들로 인해서 우울 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다시 직장을 찾아봐야 겠어’라고 말한 배우자에게“당신 나이와 스펙에 직장 찾기가 어디 쉬워?”라고 무시하는 듯 한 말한마디에 우울해진다고 한다. 또한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세탁기라도 좀 돌려놓으면 안되냐?’는 말한마디에 세탁시 사용법 하나 모르는 자신이 참 쓸모없는 인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울해졌다는 경우도 적지않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은퇴한 배우자가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 말을 어떻게 표현하면 감정이 덜 상할 수 있을까? 말의 내용은 예리해도, 말의 표현은 부드럽게 해야 한다. 부부사이에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있지만, 같은 말이라도 말의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고 감정이 덜 상할 수도 있다. 다시 직장을 찾아봐야 겠어라고 배우자가 말하면‘당신 나이와 스펙에 직장 찾기가 어디 쉬워?”대신에 ‘당신처럼 능력 있고 성실한 사람을 채용하는 직장은 복받은 거지요.’라고 바꿔서 말해보자.

은퇴한 배우자의 어깨가 조금은 으쓱하게 만드는 말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세탁기라도 좀 돌려놓으면 안 되냐?” 라는 말 대신에 “당신 혹시 세탁기 사용법이 궁금하면 알려줄게요. 내가 없는 동안에라도 당신이 말끔한 모습이면 좋겠어요. ”라고 바꿔서 말해보자. 은퇴한 배우자의 자존심이 덜 상할 거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말도 고운법이다. 말의 표현을 곱게 하면 “당신이 집안일을 가르쳐주면 나도 열심히 해볼게”라는 말이 돌아올 확률이 높아진다.

은퇴한 부모의 자존감과 존재감을 수직상승 시켜주는 비타민

특히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있던 아버지가 은퇴 후 집에 있으면서 자녀들과의 관계를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자녀들이 은퇴한 부모에게 가장 힘을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얼마 전 대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은퇴하신 지인 분을 만났다. 딸이 이런말을 했을 때 너무 고마웠단다. “아빠, 저 수업과제 하는 것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라는 말. 보통 해 뜨기 전 집을 나서서 해진 뒤 늦게 퇴근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어색해지기 쉽다. “시험은 잘 봤니?”라는 부모의 첫마디부터가 부담스러워 싫다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 평상시 대화가 자주 오고간 사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가 거의 없다가 은퇴 후에 계속 마주치게 되는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럴 때 자녀의 도와달라는 이런 말 한마디는 은퇴한 부모의 자존심과 존재감을 수직상승 시켜주는 비타민이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야

은퇴한 배우자나 부모를 둔 가족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가족의 응원과 함께 은퇴한 자신의 긍정적인 생각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은퇴를 앞둔 지인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은퇴는 새로운 세계로의 새 출발’이라고. 그 지인은 평생 자신을 위해 식사를 챙겨준 아내를 위해 요리교실을 제일 먼저 등록할거라고 한다. 왜냐하면 직장에 다니느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아내를 위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서란다.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도 부모가 자신의 삶을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은퇴는 새로운 출발

노후에 대한 계획에 있어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걱정하기보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경험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를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은퇴 후 부부가 함께 즐기는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지인의 모습이 설레 보였다. 이런 긍정의 기운이 가족을 더 긍정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분이나 가족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은퇴 후 빡빡했던 수첩의 스케줄이 어느 날 갑자기 텅 비어 버리면서 웬지 모를 불안함과 허무함이 밀려들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은퇴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방향을 밝은 쪽으로 기울여보자. 만일 청취자여러분이 20세부터 60세까지 하루 8시간씩 일한다고 하면 총 11만 6,800시간을 일하게 된다. 그럼 은퇴한 뒤 60세부터 80세까지의 자유시간은 어떨까? 수면시간 8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총 11만 6,800시간으로 은퇴 전까지의 노동시간과 일치한다고 한다.

은퇴 후는 인생의 반이 남아있는 것!

은퇴 후야말로 조직이나 남 눈치 볼 것 없이 ‘자신의 인생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시기임을 기억하자. 무엇을 하든 자신 마음이며 그게 바로 열심히 일했던 은퇴자의 즐거움이다. 은퇴 후가 진짜 재미있는 자기인생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나이는 우리에게 흰머리와 주름살만 주는 게 아니다. 그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어울리는 깊이 있는 멋도 함께 준다. 은퇴로 인한 막연한 불안감 따위에 끌려 다니기 보다는 은퇴를 ‘제2막의 인생’으로 설레면서 받아들여보자.
[박영실 칼럼] 은퇴한 배우자에게 힘을 주는 말
<한경닷컴 The Lifeist>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 박영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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