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7기)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그보다 선배 기수인 검찰 간부들이 하나둘 사의를 밝히고 있다. 군대처럼 서열이 엄격한 검찰 집단 특유의 기수문화가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지명된 이후처럼 검찰 간부들의 줄사퇴가 재연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여환섭 법무연수원장(24기)과 이두봉 대전고검장(25기)이 최근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두 사람은 이원석 차장검사와 함께 막판까지 검찰총장 후보에 들었던 인물이다.

이 후보자는 총장 지명 직후 선배 검사들에게 직접 연락해 “검찰에 남아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들의 사직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여 원장과 이 고검장은 후배 기수인 이 차장검사가 검찰총장 후보자로 낙점되자 후배에게 길을 터준다는 취지로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선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높은 검사는 물러나는 것이 오랜 관례로 굳어져 있다.

과거에도 새 검찰총장 지명으로 이른바 ‘기수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여러 검찰 간부가 줄줄이 옷을 벗고는 했다. 윤 대통령이 고검장도 거치지 않은 채 검찰총장에 올랐던 2019년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전임자인 문무일 전 총장(18기)보다 다섯 기수 아래였다. 새 검찰총장 지명 이후 봉욱 당시 대검 차장검사(19기), 박정식 서울고검장(20기), 송인택 울산지검장(21기) 등 10명 이상의 간부가 차례로 검찰을 떠났다.

현재 이 후보자보다 선배인 검찰 간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추가 사퇴가 잇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후보자는 전임인 김오수 전 총장(20기)보다 일곱 기수 아래다. 여 원장과 이 고검장 외에 선배 고검장·검사장이 10여 명이나 된다. 김후곤 서울고검장(25기), 노정연 부산고검장(25기), 임관혁 서울동부지검장(26기), 문홍성 전주지검장(26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대거 물러난다면 지휘부 공백 사태와 간부 연소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다만 이제는 검찰 내부에서도 “기수 역전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돼 과거처럼 대규모 줄사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일반 기업에선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임원에 오르는 사례가 나온 지 오래며 정부 여러 부처에서도 종종 기수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법무부 역시 한동훈 장관(27기)과 이노공 차관(26기)이 기수 역전 상태로도 호흡을 맞추며 매끄럽게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