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원 잠식 및 소득 이전(BEPS) 권고사항을 지속적으로 국내 세법에 반영해왔습니다.”

고광효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언론에 나온 역혼성실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본지가 올해부터 시행이 본격화된 BEPS 방지협약에 따른 국내 세제개편이 이뤄지지 않아 수조원에 달하는 국부가 해외로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한 해명이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인가 싶지만 정반대다. 고 실장은 “최근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역혼성실체에 대한 과세에 나서면서 국민연금 등의 해외투자 세후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며 “역혼성실체 문제로 과세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분명 미진한 점이 있었단 얘기다.

역혼성실체란 동일한 조직을 놓고 국내와 해외에서 법률적·세무적 해석이 다른 경우를 뜻한다. 기업이나 연기금이 해외 투자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 대표적 사례다. 기업 등이 국가 간 세법 차이나 조세제도의 미비점을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이 BEPS다.

그간 해외에선 SPC를 단순히 이익을 자국으로 이전하는 ‘도관’으로 봐 과세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엔 아직 도관 개념이 없다 보니 이를 법인으로 취급해왔다. 올해부턴 EU와 미국이 만약 한국에서도 도관이라 보지 않으면 이들 SPC 등에 25~30%의 세금을 매기기로 했는데, 한국은 아직 관련 세제 개편을 하지 않아 원래대로면 한국으로 올 수익을 현지에서 ‘원천징수’ 당할 판이다.

역혼성실체 이슈는 2015년부터 제기된 데다 심지어 2017년 한국세무사회는 “역혼성단체 방지 규정 등에 대처해야 한다”며 입법 건의안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달 초 국민연금이 이 문제가 시급하다고 보고하고서야 문제를 파악했다고 기재부는 밝혔다.

기재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정확히 얼마나 되는 시행령이나 조세조약을 개정해야 하는지, 혹시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직 확실치 않다”고 답했다. 세금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해외 도관 조직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뒤늦게라도 대응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일단 반성이 전제돼야 앞으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왜 그동안 대응을 못 했는지부터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