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간 가족과 생이별…진화위 조사로 드러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1974년 단속반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여섯 살 아이는 그 뒤로 48년간 자신이 가족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진실규명 신청자인 설모(54)씨는 1974년 부산역 부근에서 단속반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된 뒤 신상기록 카드에 잘못된 정보가 기재돼 가족들과 강제로 생이별하게 됐다.

가족들은 설씨를 찾지 못하다 시간이 흐른 뒤 군대 소집 불응에 따른 벌금이 부과되자 그를 사망 신고했다.

설씨는 1982년 형제복지원을 탈출한 뒤 일용직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다가 올해 1월 48년 만에 남동생과 아버지를 극적으로 상봉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4일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무분별한 단속부터 형제복지원 운영, 수용 과정 전반에 걸쳐 인권침해가 확인됐다.

설씨도 수많은 피해자 사례 중 하나다.

강제노역·약물과다투여…여섯 살 아이가 끌려간 지옥
◇ 군대식 통제…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려
권위주의 정부 시절 '부랑인'으로 취급당해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이들은 열악한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임금착복, 구타, 성폭력 등에 시달렸고 일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설 건축 공사와 자활사업에 수용자들을 강제로 동원했지만, 적정 임금이 책정되지 않았고 그나마 지급되는 급여마저도 시설 직원들이 임의로 유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이 강제노역한 대가로 지급하는 자립 적금을 주지 않거나 착복하기도 했다.

1986년 1인당 평균 예입액은 55만여원이지만 평균 지급액은 20만4천여원에 불과했다.

가족이 있는 수용자는 강제로 생이별을 당해야 했다.

연고자와 연락할 기회는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고, 수용자 신원이 변경돼 강제로 실종자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학령기에 잡혀간 아동들에게는 최소한의 의무교육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강제노역·약물과다투여…여섯 살 아이가 끌려간 지옥
◇ 수용자 사망률, 당시 일반인에 비해 높아…정신과 약물 과다 투약 정황도
수용자들의 사망자 수도 일반인 사망자와 비교할 때 훨씬 많았다.

1986년 한 해 형제복지원 사망자는 135명으로 당시 일반 국민 사망률 0.318%보다 13.5배 높은 4.30%였다.

같은 해 형제복지원의 결핵 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 인구 결핵 사망률 0.014%와 비교해 29.2배 높았다.

형제복지원이 수용자 통제를 위해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화학적 구속'을 한 정황도 밝혀졌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1년간 산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 증세 완화제)은 25만 정으로, 당시 정신요양원 수용인원 395명 중 342명이 1년간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었다.

또 같은 해 형제복지원 회계에서 지출된 정신환자 시약비는 1천267만여원으로, 일반환자 시약비(1천15만여원)보다 많았다.

위원회가 최초로 입수한 형제복지원 정신과 약물 구입 목록에도 정신과의 정신의약품으로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장애 치료제, 간질성 경련 및 부정맥 치료제, 마약류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 등이 포함됐다.

위원회는 "형제복지원은 수용자 가운데 부적응자나 반항자에게 임의로 약물을 투여하고,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