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인구감소의 경제적 귀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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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로 인한 또 다른 공포
저출산, 단기간 반전 어려울 전망
이노베이션 말고는 출구 없어
담대한 규제개혁 더는 지체 말고
'量에서 質' 교육으로의 전환과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 나서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저출산, 단기간 반전 어려울 전망
이노베이션 말고는 출구 없어
담대한 규제개혁 더는 지체 말고
'量에서 質' 교육으로의 전환과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 나서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은 무엇일까?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국가 번영의 정도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척도는 인구 증가 수”라고 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증가하던 유럽에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에 토머스 맬서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식량은 산술급수적(등차수열)으로 늘어나 인구 재앙이 온다는 <인구론>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세상을 ‘맬서스 트랩’에서 구해냈다.
맬서스 시대와 달리 20세기 경제학을 이끌었던 존 매이너드 케인스 시대의 영국은 인구 감소로 돌아서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자 훗날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던 게 케인스의 그 유명한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다. “미래는 과거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던 케인스가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을 놓칠 리 없었다. 경제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가 감소하면 이를 상쇄할 기술 진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엔진인 투자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게 케인스의 전망이다. 투자가 위축되면 실업이 발생하고 경제는 불황에 빠진다. 맬서스가 인구 재앙을 우려했다면 케인스는 실업 재앙을 걱정했다. 케인스가 진단한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은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과 맞닿는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케인스의 실업 재앙 걱정에 동의하더라도 정부 투자가 수요 부족을 해결할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처방이냐는 것이다. 맬서스는 상상도 못한 수명 연장이 몰고온 초고령 사회와 사회보장 부담, 재정 파탄 위기, 지방자치단체 소멸 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인구가 감소한다고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인구가 감소해도 노동생산성이 더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할 수 있다. 문제는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를 통해 ‘이노베이션’이 일어나야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조지프 슘페터가 최후의 구원자로 다시 소환될 수밖에 없다.
이노베이션은 공급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투자 촉진, 규제 개혁이 기업을 위한 정책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케인스는 공공 투자로 유효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으로 잠재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노베이션은 공급정책이자 수요정책이다. 인구 팽창 시대 맬서스가 우려한 빈곤과 생존 경쟁의 인구 재앙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도, 인구 감소 시대 케인스가 걱정한 투자 및 수요 부족에 따른 실업 재앙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노베이션이었다. 한국의 저출산 추세는 구조적·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반전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더욱 절박한 과제가 이노베이션이다. 한국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기업활동을 촉진해야 할 상법, 경제의 역동성을 높여야 할 공정거래법부터 기업과 산업, 시장을 죽이는 거대한 규제법이 된 지 오래다. 규제샌드박스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이노베이션 의욕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면 인구 감소보다 빠른 급격한 투자 감소로 실업 공포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노동생산성이 추락하면 성장률이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노베이션의 원천은 사람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인재의 질(質)이 더욱 중요해지지만, 양에서 질로의 교육 전환은 안 보인다. 과거와 똑같은 ‘양적 잣대’가 판을 치고 ‘평균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다. 윤석열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은 숫자만 채우면 되고, 반도체 인력 문제는 반도체학과를 신설하면 끝이란 식이다. 인구 증가 시대에나 통하던 발상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글로벌 인재를 끌어와서라도 이노베이션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중국과 충돌하는 미국이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이어 글로벌 인재 유치에 박차를 가하면서 또다시 인재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사령탑은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며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는 시그널을 보내기 바쁘다. 국내 우수 인재가 줄줄이 빠져나가게 생겼다. 인구 감소보다 정부의 엇박자 대응이 초래할 재앙이 무섭다.
맬서스 시대와 달리 20세기 경제학을 이끌었던 존 매이너드 케인스 시대의 영국은 인구 감소로 돌아서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자 훗날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던 게 케인스의 그 유명한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다. “미래는 과거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던 케인스가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을 놓칠 리 없었다. 경제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가 감소하면 이를 상쇄할 기술 진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엔진인 투자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게 케인스의 전망이다. 투자가 위축되면 실업이 발생하고 경제는 불황에 빠진다. 맬서스가 인구 재앙을 우려했다면 케인스는 실업 재앙을 걱정했다. 케인스가 진단한 인구 감소의 경제적 귀결은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과 맞닿는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케인스의 실업 재앙 걱정에 동의하더라도 정부 투자가 수요 부족을 해결할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처방이냐는 것이다. 맬서스는 상상도 못한 수명 연장이 몰고온 초고령 사회와 사회보장 부담, 재정 파탄 위기, 지방자치단체 소멸 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인구가 감소한다고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인구가 감소해도 노동생산성이 더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할 수 있다. 문제는 자본 축적과 기술 진보를 통해 ‘이노베이션’이 일어나야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조지프 슘페터가 최후의 구원자로 다시 소환될 수밖에 없다.
이노베이션은 공급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투자 촉진, 규제 개혁이 기업을 위한 정책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케인스는 공공 투자로 유효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슘페터는 이노베이션으로 잠재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노베이션은 공급정책이자 수요정책이다. 인구 팽창 시대 맬서스가 우려한 빈곤과 생존 경쟁의 인구 재앙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도, 인구 감소 시대 케인스가 걱정한 투자 및 수요 부족에 따른 실업 재앙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노베이션이었다. 한국의 저출산 추세는 구조적·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반전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더욱 절박한 과제가 이노베이션이다. 한국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기업활동을 촉진해야 할 상법, 경제의 역동성을 높여야 할 공정거래법부터 기업과 산업, 시장을 죽이는 거대한 규제법이 된 지 오래다. 규제샌드박스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이노베이션 의욕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면 인구 감소보다 빠른 급격한 투자 감소로 실업 공포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노동생산성이 추락하면 성장률이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노베이션의 원천은 사람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인재의 질(質)이 더욱 중요해지지만, 양에서 질로의 교육 전환은 안 보인다. 과거와 똑같은 ‘양적 잣대’가 판을 치고 ‘평균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다. 윤석열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디지털 100만 인재 양성은 숫자만 채우면 되고, 반도체 인력 문제는 반도체학과를 신설하면 끝이란 식이다. 인구 증가 시대에나 통하던 발상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글로벌 인재를 끌어와서라도 이노베이션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중국과 충돌하는 미국이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이어 글로벌 인재 유치에 박차를 가하면서 또다시 인재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사령탑은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며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는 시그널을 보내기 바쁘다. 국내 우수 인재가 줄줄이 빠져나가게 생겼다. 인구 감소보다 정부의 엇박자 대응이 초래할 재앙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