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드라마 계의 장동건'이라 불리던 중견배우 김병세(64)가 15세 연하의 한국인 사업가와 결혼식을 올리고 현재 미국에서 거주 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김병세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병세세상'에 올라온 영상에서 오랜만에 근황을 전하며, 미국에 정착하게 된 과정과 함께 결혼에 얽힌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영상에서 그는 2018년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으며, 이 해 어머니의 별세와 함께 배우로서의 활동도 사실상 멈추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김병세는 2018년 4월, 미국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당시 MBC 드라마 '부잣집 아들' 촬영에 매진하던 중이라 장례식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작품을 마친 뒤 그는 같은 해 10월 어머니 산소를 찾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고, 우연한 자리에서 지인을 통해 소개팅을 권유받아 현재의 아내를 처음 만났다고 부연했다. 김병세는 당시를 회상하며 "식사를 마치고 농담처럼 '누가 소개라도 해줘야 결혼하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다음 날 실제로 연락이 왔다"며 "3~4일 뒤면 귀국 예정이었지만 무례하지 않게 만나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만남에 응했다"고 밝혔다.소개팅 당일, 상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눈에 후광이 비치듯 느껴졌다"며 "심장이 두근거리진 않았지만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귀국 이후에도 김병세는 그 여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결국 3주 만에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두 번째 만남에서 관계가 급진전됐다. 김병세는 결국 90일 만에 직접 프러포즈를 했
카니발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카니발은 서양 가톨릭 문화권에서 사순절 직전에 열리는 축제로, 그 시기는 대체로 2월이다. 카니발의 기원은 고대 로마인의 축제인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로 여겨진다. 이것은 동지(冬至)쯤의 축제로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에게 감사하던 행사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축제 기간에 사회의 약자는 강자를 놀려줄 수 있었고, 노예도 주인처럼 행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투르날리아는 일 년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세에 접어들면서 교황청은 이러한 이교도의 축제를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교회력 속으로 흡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리하여 사투르날리아는 기독교 절기 행사에 접목되었고, 축제일은 부활절을 앞두고 40일 동안 육식을 금하며 경건하게 지내야 하는 사순절 직전으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영어 ‘카니발(carnival)’과 프랑스어 ‘카르나발(carnaval)’은 이탈리아에서 온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카르네발레(carnevale)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고기여, 안녕’이란 뜻의 라틴어 ‘카르네 발레(carne vale)’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로마의 카니발 중심 무대 ‘비아 델 코르소’이탈리아에서 카니발이라면 가면 축제로 유명한 베네치아 카니발과 정치를 풍자하는 가장행렬 축제로 유명한 비아레지오의 카니발을 가장 먼저 손꼽는다. 로마의 카니발은 오랫동안 시들해졌다가 최근에 서서히 부활하고 있지만 180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베네치아 카니발 못지않게 유명했다.로마의 카니발이라면 로마 중심가의 동맥인 비아 델 코르소(Via 
여기부터 여기까지 쭉 찢어주세요. 멀쩡한 치마를 찢으러 온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옷 수선집 사장님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런데 그 염려와 달리 사장님은 익숙한 미소와 함께 툭 말을 건넨다. 탱고 하시는구나. 알고 보니 나처럼 치마를 찢으러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모두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었다고. 초보 땅게라가 어쩔 줄 몰라하며 결정을 머뭇거리는 동안 수선집 사장님은 어느 부분을 어디까지 찢어야할 지 춤을 추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잡아서 안내했고, 쭉 찢어놓으셨다. 치마는 찢기지만 마음은 꿰매졌다. 불안감이, 초조함이, 머뭇거림이, 두려움이 그 바느질 사이로 봉인되고, 용기와 도전의식이 찢어진 치마 사이로 채워졌다. 그렇게 ‘탱고를 배우면 치마를 찢기 시작한다’는 말이 내게도 현실이 되었다.치마를 찢는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탱고를 추면서 다리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춤의 역사에서 옷이 문화와 시대상을 담고, 나아가 춤 자체를 변화시키는 주요 기제가 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춤추는 여성이 옷 사이로 다리를 드러내는 것은 역사적, 문화적, 미적, 기능적으로 다양하게 얽혀져 있는 부분이다. 많은 사회와 시대에서 여성의 다리는 성적 상징성을 갖는 신체 부위로서 통제되어 왔고, 특히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여성의 몸을 유혹과 타락, 죄의 잠재성을 지닌 것으로 해석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드레스 자락은 이런 몸의 윤리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고정하는 장치였다. 18세기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문무용수들이 처음 등장해서 종횡무진 활약할 때도 여성 무용수들은 땅에 치렁치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