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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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들어간 초등학교 입학식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밖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다만 행사가 끝난 뒤 어머니와 제천 경찰서에 수감된 아버지 면회를 갔던 기억은 또렷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를 유치장이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 야단쳤기 때문이다. 지인의 무고(誣告)로 조사를 받느라 아버지가 입학식에 오시지 못했다는 얘기는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 들었다.

그렇게 소리치던 아버지가 껄껄껄 웃으며 저만큼 물러서 있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셨다.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몇 번이고 다독여줬다. 나는 그게 아버지가 자식을 칭찬하는 방식임을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왜 웃으셨냐고 어머니께 물었다. 아버지가 입학식이 어땠느냐고 묻기에 교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마디씩 질문하며 면접을 봤다고 하셨단다. 내게는 "소금이 짜니 싱겁니?" 하고 물었는데 당당하게 "싱거워요"라고 답을 했다고 하자 아버지가 크게 웃으셨다고 했다.

몇 해 지나 불현듯 그때 생각이 떠올라 아버지에게 왜 그날 크게 웃으셨느냐고 여쭸다. 그때 하신 말씀. "영어(囹圄)의 몸이 돼 아비 노릇을 하지 못한 걸 네가 힐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 또한 나답지 못한 언행에서 비롯된 걸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듯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면 아버지가 아니다. 이름에 맞는 정체성을 갖추는 노력은 한시 반때라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명(名)을 바로잡는다'라는 뜻인 '정명(正名)'이다. '대상의 이름과 그 본질이 서로 부합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당신께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며 공자(孔子)의 말씀이라고 알려주셨다.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編)에 나온다. '정치를 하신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제자 자로(子路)의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 正名乎]"라고 답한 데서 유래했다. 공자는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그것을 모난 술잔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觚不觚, 觚哉! 觚哉!]"라고 한탄하며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설파했다.

그날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이랬다. "아비가 아비답기 위해서는 아비다운 모습을 꾸미는 많은 '실제 행위'를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자는 비단 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의 역할만 말했지만, 살아가며 부딪히는 모든 언행은 그 이름에 맞게 해야 한다." 정명은 내가 살아가며 흔들릴 때마다 비춰보고 바로잡는 거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취하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분별력이다. 정명을 꾸미는 정체성은 자식은 물론 손주들에게도 잘 닦아 물려줄 첫째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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