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상태의 납을 소량 보관하고 있는 A기업은 최근까지 시설투자 비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저농도의 납을 보관만 하는데도 납이 포함된 증기가 유출될 수 있다며 환기설비를 설치하도록 한 규제 때문이다. 환경부는 이 같은 일률적인 화학물질 규제가 기업 활동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을 수용해 위험성에 따라 차등 규제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26일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환경 규제를 금지된 것 말고 다 허용하는 열린 규제로 전환한다”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환경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기업활동을 크게 제한하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화학물질 규제를 유·위해성에 따라 차등화하기로 했다.

화학사고 위험이 낮은 저농도 납 등 만성 독성 물질은 취급 시 안전관리 의무를 일부 완화하는 대신 인체 노출 빈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인체에 접촉할 경우 즉시 사고로 이어지는 고농도 황산 등 급성 독성 물질은 취급·보관 시 강력한 안전관리 의무를 요구하는 식이다. 환경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화평·화관법 개정안을 올해 말까지 마련할 방침이다.

환경영향평가는 본평가 시행 전 스크리닝하는 절차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스크리닝 결과에 따라 평가 시행 여부를 결정해 과도한 평가를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사업 규모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대상인지 갈리는 방식에 대해 “획일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스크리닝제 도입은) 10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로 환경영향평가제에 대한 인식과 환경에 관한 관심이 커져 필요성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활용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한다. 폐지, 고철, 폐유리 등 유해성이 작고 재활용이 잘되는 품목은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폐기물 규제에서 제외되도록 개선한다. 전기차 폐배터리는 ‘순환자원’으로 인정해 환경·안전 관련 규정을 제외한 모든 폐기물 규제를 면제해준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신설·합병기업에 불리한 온실가스 배출권 추가 할당 조건을 합리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사업장 신·증설을 두 배 이상으로 할 때만 추가로 배출권을 할당하는데, 이 부분을 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로 포집한 이산화탄소에 폐기물 규제를 면제하고 재활용 유형을 신설해 후년까지 7547억원 규모 시장을 형성한다는 계획도 혁신 방안에 포함됐다. 폐플라스틱에서 추출한 열분해유를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 제조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가축분뇨나 음식물쓰레기 등에서 나온 바이오가스 직거래 공급량 규제를 조정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김소현/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