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프랑스 지롱드 숲에 큰불…주민들 생활까지 위협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무척 더웠고, 가물었다. 그리고 큰 산불이 났다"
땡볕 아래 사방에서 탄내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백발의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게 그을린 나무 밑동을 옮기느라 분주했다.

23일(현지시간) 오후 3시.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에 혹시라도 허리를 다칠까 봐 보호대까지 찬 장피에르 구르게(73) 씨의 얼굴과 옷은 금세 땀과 잿가루 범벅이 됐다.

프랑스 남서부 지롱드주(州) 랑디라 숲 인근에 지은 자그마한 집에 사는 구르게 씨는 물을 데우는 데 필요한 장작을 모으고 있었다.

7월 중순 시작된 '괴물'로 불린 산불로 집 근처에 있는 나무가 모두 타버리는 바람에 더는 땔감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자동차를 끌고 쓸만한 나무를 찾아다니는 게 요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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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쓸 수 있는 그루터기 15개 남짓을 넣으니 짐칸엔 남는 공간이 없었다.

2주 동안 이어진 산불로 구르게 씨가 입은 직접적인 재산 피해는 다행히 없다.

소방대원들 덕분에 집은 무사했지만 집을 둘러싼 모든 게 타버려 그의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다.

그는 "산불을 피해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지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러 매캐한 냄새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지만 흩날리는 잿가루에 마당에 빨래도 널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구르게 씨는 이번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은 방화였지만, 기온이 지나치게 높은데다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산불이 이렇게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달 초까지 지롱드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40도를 넘나들었고, 봄부터 비는 오지 않았다.

프랑스 기상청 통계를 보면 올해 7월 프랑스의 평균 강수량은 9.7㎜로 1991∼2022년 월평균의 16%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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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게 씨를 만난 숲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나오는 마을 기요 초입에서는 질 파냐(60) 씨가 웃통을 벗어젖힌 채 염소들이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파냐 씨는 산불이 나기 전에는 염소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집 앞에 풀어놓고 풀을 뜯어 먹게 했는데, 산불이 나고 나서는 집에서 1㎞ 이상 걸어 나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근처에 있는 농장에서 여러 가축을 키우고 있는 파냐 씨는 이곳에 30년 넘게 살았지만, 가축을 모두 데리고 대피해야 할 정도로 큰 산불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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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밤 10시께 산불이 그의 농장 코앞까지 닥쳤고, 파냐 씨는 염소들을 밴으로 급히 대피시켰다.

40마리에 달하는 염소를 한 번에 태울 수 없어 여러 번 오가야 했다.

새와 오리, 닭 등은 데려갈 수 없어 인근 연못에 옮겨놓고 다음 날 다시 찾으러 왔는데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고 한다.

하마터면 가족을 잃어버릴 뻔했다며 파냐 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파냐 씨는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더웠고, 건조한 데다 울창한 숲까지 3박자가 갖춰져 이 지역에서 산불 피해가 커졌다"며 "지구 온난화가 산불 확산을 거든 측면이 있다"고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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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불이 발화한 지점을 수소문해 가던 중 나무가 이 정도로 탔으면 남아난 게 없으리라 생각하던 찰나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새하얀 집을 발견했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무너져가는 낡은 집을 사서 새로 수리하고 올해 입주한 케빈 카르만(32) 씨의 집이었다.

그의 집은 멀쩡했지만, 집 주변은 모든 게 타버렸다.

카르만 씨는 불이 점점 집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최소한의 짐만 챙겨 부랴부랴 운전대를 잡았다.

집이 불에 타고도 남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흐레 뒤에 돌아온 집은 그대로 있었다.

그의 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소방대원들이 집 주변에 진을 쳐놓고 불길이 집에 닿는 일이 없도록 밤낮으로 지켜준 덕분이었다고 카르만 씨는 설명했다.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카르만 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길을 잡으러 소방차가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길목에 "우리의 모든 영웅에게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적은 종이를 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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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