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비'와 '초토화'는 함께할 수 없는 사이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초(焦) 자가 '불 화(火)'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요령이다. 한자 밑의 점 네 개()로 찍힌 게 부수로 쓰인 '불 화' 자다. 당연히 폭격이나 화재로 '초토화'가 될 수는 있어도 물난리로 초토가 될 수는 없다.
“이곳이 고추·고구마밭이었다는 게 믿어집니까? 고작 세 시간 동안 내린 비로 600여 평 밭이 초토화됐습니다.”
8월 들어 내린 늦장마는 예상외의 폭우로 전국 곳곳에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 언론들이 비 피해 상황을 연일 자세히 전하는 가운데, 일부 ‘물폭탄에 농지 초토화’ 같은 제목이 새삼 눈에 띄었다. 독자들도 여기까지 읽는 동안 어법적으로 이상한 곳을 찾았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꼈다면 우리말에 꽤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焦가 ‘(불에) 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초미의 관심사’라고 하는데, 매우 급하고 긴요한 일을 말할 때 쓴다. 초미(焦眉), 즉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세상 무엇보다도 급한 상황임을 빗댄 것이다. 초(焦) 자가 ‘불 화(火)’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요령이다. 한자 밑의 점 네 개()로 찍힌 게 부수로 쓰인 ‘불 화’ 자다. 당연히 폭격이나 화재로 ‘초토화’가 될 수는 있어도 물난리로 초토가 될 수는 없다.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난장판’ 등 적절한 말이 얼마든지 있으니 골라 쓰면 된다.
언론에서 초토화 사용은 일찍부터 엿보인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야 전 면적의 칠분(七分)이나 초토화(焦土化)시키어 이제 바로 비가 만족히 나리고….’ 동아일보는 1929년 8월 17일 자에서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소식을 전했다. ‘초토화’를 썼지만 맥락이 다르다. 비가 오지 않아 불볕에 타들어 가는 토양을 가리키는 표현이므로 이는 적절하다.
큰비로 피해를 봤다 치면 무작정 ‘초토화’를 꺼내드는 요즘 일각의 우리말 인식과는 다른 모습이다.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그 쓰임새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대충 말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말 사용을 반복해 오류에 빠지게 한다.
“전국 흐리고 비 … 낮 최고 35도 불볕더위 지속” “폭우는 지나갔지만 오락가락하는 빗속에 재차 불볕더위가 찾아왔습니다”…. 이런 표현은 어색하다. ‘흐리고 비’ 같은 말이 ‘불볕’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도 오고 습도가 높으면서 더운 것은 ‘무더위’나 ‘찜통더위’ 정도가 좋다. 무더위는 ‘물+더위’ 합성어다.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무덥다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차 나온 말이 찜통더위다. 아예 뜨거운 김을 쐬는 것같이 푹푹 찌는 더위를 나타낸다.
이에 비해 ‘불볕더위’란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강더위’란 말을 썼다. 그 강더위를 더 세게 표현한 게 ‘불볕더위’라고 보면 된다. 강더위란 오랫동안 비도 없이 볕만 내리쬐는 심한 더위다. 이때의 ‘강-’은 한자말 ‘강(强)’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다. ‘마른’ 또는 ‘물기가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강기침(마른기침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강밥(국이나 찬도 없이 맨밥으로 먹는 밥), 강울음(눈물 없이 우는 울음) 같은 게 그런 예다. 겨울철 눈도 없이 매섭게 춥기만 할 때 쓰는 ‘강추위’의 ‘강’과 같다. 강더위에는 비가 없고 강추위에는 눈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다 같이 몹시 심한 더위라도 뉘앙스와 쓰임새에 차이가 있다.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하게 더울 때는 무더위와 찜통더위가 제격이다. 이에 비해 비도 없이 볕만 쨍쨍 내리쬘 땐 강더위나 불볕더위라고 하는 게 딱이다.
8월 들어 내린 늦장마는 예상외의 폭우로 전국 곳곳에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 언론들이 비 피해 상황을 연일 자세히 전하는 가운데, 일부 ‘물폭탄에 농지 초토화’ 같은 제목이 새삼 눈에 띄었다. 독자들도 여기까지 읽는 동안 어법적으로 이상한 곳을 찾았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꼈다면 우리말에 꽤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불에 타 황폐해진 상태를 초토화라 해
‘초토화’가 그 대상이다. 이 말의 용법은 우리말 코너를 통해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도 여전히 그 사용에 둔감한 것 같다. 초토(焦土)는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한다. 거기에 ‘될 화(化)’가 붙었으니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焦가 ‘(불에) 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초미의 관심사’라고 하는데, 매우 급하고 긴요한 일을 말할 때 쓴다. 초미(焦眉), 즉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세상 무엇보다도 급한 상황임을 빗댄 것이다. 초(焦) 자가 ‘불 화(火)’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요령이다. 한자 밑의 점 네 개()로 찍힌 게 부수로 쓰인 ‘불 화’ 자다. 당연히 폭격이나 화재로 ‘초토화’가 될 수는 있어도 물난리로 초토가 될 수는 없다.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난장판’ 등 적절한 말이 얼마든지 있으니 골라 쓰면 된다.
언론에서 초토화 사용은 일찍부터 엿보인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야 전 면적의 칠분(七分)이나 초토화(焦土化)시키어 이제 바로 비가 만족히 나리고….’ 동아일보는 1929년 8월 17일 자에서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소식을 전했다. ‘초토화’를 썼지만 맥락이 다르다. 비가 오지 않아 불볕에 타들어 가는 토양을 가리키는 표현이므로 이는 적절하다.
큰비로 피해를 봤다 치면 무작정 ‘초토화’를 꺼내드는 요즘 일각의 우리말 인식과는 다른 모습이다.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그 쓰임새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대충 말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말 사용을 반복해 오류에 빠지게 한다.
습도 높을 땐 무더위·찜통더위 어울려
글쓰기의 시작은 단어 선택에 있다. ‘의미에 맞는’ 단어를 찾는 힘이 곧 글쓰기 능력을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을을 재촉하는 막바지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도 미세하게 다른 어감이 있다. 올여름을 마무리하면서 더위를 나타내는 말 몇 가지를 정리해보자.“전국 흐리고 비 … 낮 최고 35도 불볕더위 지속” “폭우는 지나갔지만 오락가락하는 빗속에 재차 불볕더위가 찾아왔습니다”…. 이런 표현은 어색하다. ‘흐리고 비’ 같은 말이 ‘불볕’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도 오고 습도가 높으면서 더운 것은 ‘무더위’나 ‘찜통더위’ 정도가 좋다. 무더위는 ‘물+더위’ 합성어다.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무덥다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차 나온 말이 찜통더위다. 아예 뜨거운 김을 쐬는 것같이 푹푹 찌는 더위를 나타낸다.
이에 비해 ‘불볕더위’란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강더위’란 말을 썼다. 그 강더위를 더 세게 표현한 게 ‘불볕더위’라고 보면 된다. 강더위란 오랫동안 비도 없이 볕만 내리쬐는 심한 더위다. 이때의 ‘강-’은 한자말 ‘강(强)’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다. ‘마른’ 또는 ‘물기가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강기침(마른기침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강밥(국이나 찬도 없이 맨밥으로 먹는 밥), 강울음(눈물 없이 우는 울음) 같은 게 그런 예다. 겨울철 눈도 없이 매섭게 춥기만 할 때 쓰는 ‘강추위’의 ‘강’과 같다. 강더위에는 비가 없고 강추위에는 눈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다 같이 몹시 심한 더위라도 뉘앙스와 쓰임새에 차이가 있다. 습도가 높아 후텁지근하게 더울 때는 무더위와 찜통더위가 제격이다. 이에 비해 비도 없이 볕만 쨍쨍 내리쬘 땐 강더위나 불볕더위라고 하는 게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