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유럽의 월동 걱정, 한국은?
7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고 내심 안도한 가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초여름부터 에어컨을 펑펑 돌린 것 치고는 늘어난 몇 만원이 크게 무섭지 않을 정도로 다른 물가가 많이 올랐다. 더구나 ‘에너지·식량 쌍끌이 인플레이션 대란’이란 무서운 기사가 우크라이나전쟁 시작 전부터 넘쳐났지만 아직은 감내할 만할 것이다.

여름 냉방비용이 가벼운 가족 외식 한 끼만큼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석유·가스 생산국도 아니고, 전력 생산에 혁신적 기술을 확보한 나라도 아니다. 결국 동결돼온 요금과 부채가 166조원에 달한 한국전력의 경영 실상을 볼 수밖에 없다. 한전 빚은 1년 새 30조원가량 늘어 국내 기업 중 부채 1위의 빈사 공룡이 됐다. 한더위 8월이 포함된 3분기에는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할 것이다.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일 뿐 비용은 속일 수가 없다. 가격 뒤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10월부터 영국의 가정 에너지가격 부담 상한선이 80% 뛴다는 외신을 보면 한국은 아직 안전지대처럼 느껴진다. 지난주 유럽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1년 전보다 10배 이상 폭등했다.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해온 가스 물량을 무기화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원유 생산을 줄이겠다는 방침에 따른 결과다.

이번 여름 이상 고온을 겪은 유럽의 에너지 위기감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독일에서는 난방용 땔감 나무 판매가 늘어나고, 원전 비중이 70%에 달하는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절전에 나서고 있다. 전기난로 판매 증대, 야간 가로등 소등 캠페인 같은 소식도 들린다. 영국의 가격 현실화도 수요 감축을 염두에 둔 국가 차원의 월동 준비일 것이다.

이런 소극적 소비 절감보다 에너지 생산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주장도 최근 부쩍 많아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대표적 탈원전 국가인 독일을 향해 “현 상황에서 에너지난 해결책은 원전 가동 연장”이라고 언론을 통해 조언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원전 폐쇄 운동가들을 향해 “반인간적이며, 국가 안보와 환경을 위태롭게 하는 미친 행동”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두 달 열흘 뒤면 겨울의 시작 입동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인 한국의 월동 준비는 안녕한가. 올겨울에도 실내 반소매 차림에 콸콸 쏟아지는 온수를 가격 의식하지 않고 누릴 수 있을까. 비용도 비용이지만, 에너지 수급 물량 조달에 문제는 없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