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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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출생률, 출생률이다. 북미, 유럽, 호주·뉴질랜드 등 서구권에서 이제 단일 백인국가는 눈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이들 국가에서는 출생률이 계속 떨어져도 인구가 늘어난다. 대량으로 이민을 받아들이고, 그 이민자들이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100년이면 온 나라가 유색인종들로 대체되고 말 것이다.’

2019년 3월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무슬림 겨냥 무차별 테러 사건(51명 사망)의 범인이 범행 직전 온라인에 올린 선언문이다. 87쪽 분량의 성명서 제목은 ‘대전환’이다. 프랑스 극우 논객 르노 카뮈가 “이민자들이 유럽 문화를 파괴한다”는 주장을 담아 2011년 발간한 책 제목에서 차용했다. 2019년 8월 미국 텍사스주 월마트 총기 난사 사건(23명 사망), 올해 5월 미 뉴욕주에서 발생한 슈퍼마켓 총기 난사 사건(10명 사망) 등의 범인들도 모두 대전환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이민의 명과 암…"유색인종이 유럽 망친다" 테러도 빈번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인 국가들에서는 인종 혐오에 의한 폭력 범죄가 단골 이슈다.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출신의 난민 혹은 불법 체류자들을 겨냥한다.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사회·문화적 이유, 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경제적 이유 등이 이민 혐오를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극우·보수 성향의 정치인들은 유권자 표심을 얻기 위해 이민자 이슈를 이용하기도 한다.

오는 9월 25일 총선을 앞둔 이탈리아에서도 다시 반(反)이민 정서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가 유력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하면서다. 이탈리아 민족주의를 기치로 내건 그는 대량 이민을 끝내고 유럽연합(EU)에서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엔 자신의 극우 공약을 뒷받침하려고 한 아프리카 기니 출신 난민이 우크라이나 여성을 성폭행하는 동영상을 SNS에 올려 논란을 빚었다.

2020년 실행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도 반이민 정서에서 비롯됐다. 동유럽 등 EU 회원국 출신 외국인은 영국인과 동일한 사회보장 대우를 받거나 오히려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누리게 하는 당시 영국의 이민 정책이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고, 결국 EU 탈퇴 찬성 여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갤럽이 지난달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민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2년 전보다 7%포인트 줄어들어 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69%는 이민 규모를 줄이거나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이민자 수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민은 우수한 두뇌를 유입시키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통로기도 하다. 애플, 구글, 리바이스 스트라우스 등 미국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45% 가량은 이민자 출신들이 세웠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중 5분의2가 이민자다. 미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산업, 영국 런던의 금융산업 등은 각기 다른 국적의 이민자들이 모여 이룩한 산실이다.

결국 이민에 대한 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해야 하는 건 각국 정부들의 숙제다.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나라들보다 개방적인 호주의 이민 정책도 강경함으로 뒷받침된다”고 전했다. 호주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 등에서 보트피플(바다를 통해 유입되는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 불법 난민은 호주 땅을 밟을 수 없다는 강경책이다. 캐나다 퀘벡대학교의 앨리슨 하렐 교수는 “국민들은 그들의 정부가 국경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수록 이민에 더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