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석유화학, 지금이 최악 맞지만…V자 반등 기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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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인터뷰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
“인플레이션으로 소비·투자 회복 지연”
“노후 설비 해제 소식도 아직 없어” “석유화학 산업은 공급 측면에서 업황이 고점에서 바닥으로 내려가기까지 가장 짧으면 1년 5개월 정도 걸려요. 작년 2분기 중반에 고점을 찍었으니, 올해 9월에서 연말 사이가 바닥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지금이 최악의 국면이라는 거죠. 문제는 바닥을 찍었다고 해도 거기서 V자로 반등할지, L자와 비슷한 완만한 회복에 그칠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경 마켓PRO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민감업종 중에 가장 먼저 하락 사이클에 진입한 화학업종의 반등 시기를 묻는 질문에 “1980년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인해 수요 회복이 늦어질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침체됐던 석유화학 업황이 호황 국면으로 돌아설 때는 △노후 설비의 해체(공급 감소)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수요 진작) △국제유가의 급락(물가 안정) 등 세 가지가 맞물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우선 중국에서는 작년 현지 2위 부동산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의 파산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됐다. 건설 경기가 부진하면 건물의 배수관을 만드는 소재로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외장재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의 수요가 감소한다.
그나마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화학제품 수요 부진은 내년 봄이 되면 회복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황 연구원은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꺾이기 시작한 게 작년 2~3분기이고, 이제 1년 좀 넘게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불황에도 버틸 체력을 가진 업체들로의 업계 재편이 이뤄진 뒤 중국 부동산업계가 재편된 뒤 정부의 부양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소비와 기업의 투자를 함께 위축시키는 데다, 금방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투자비 부담을 못 이기고 미국 애리조나에 지으려던 2차전지 공장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변 연구원은 “똑같은 규모의 공장을 짓는 데 드는 투자비가 작년과 비교해 50% 정도 올라갔다”며 이런 상황에선 설비 가동 이후 감가상각비와 같은 비용을 계산하면 투자를 늦추는 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요 위축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은 유럽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차질로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전기요금 가격이 10배 넘게 치솟았다. 변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 플라스틱 외장재가 들어가는 정보기술(IT)제품, 폴리에스터와 같은 화학섬유가 쓰이는 의류 소비가 위축된다”며 “가처분소득이 복원돼야 수요도 되살아날 수 있지만, 그 시기가 (중국의 부동산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내년 상반기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물가 상승의 양상이 ‘그레이트 인플레이션 시대’라고 불린 1970~1980년대와 비슷해서다.
당시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으로 물가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폴 볼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행보를 따라가겠다고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은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황 연구원은 “1980년대에도 물가를 잡는 데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가 석유화학 업황이 바닥을 친 뒤 가파르게 회복하는 V자 반등이 아닌, L자형의 완만한 회복을 점치는 이유다.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산업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노후 설비의 퇴장이 이뤄졌다. 황 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진 뒤 약 6개월 이후부터 글로벌 정유 설비의 3.5~4%의 해제가 발표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석유화학제품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이후 오히려 위생용품 등의 원료로 수요가 증가했고, 노후설비나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유럽의 에너지난에 따른 석유화학제품 생산 차질도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천연가스 부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유럽의 석유화학 설비에서의 제품 공급이 줄어드는 건 맞지만, 에너지 부족으로 플라스틱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공장의 가동도 멈추면서 수요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 국면에서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이 지난 2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과 달리 이익을 남겨 선방한 LG화학도 내년부터는 LG화학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황 연구원은 분석했다. 주력 제품인 ABS(고부가합성수지)의 공급 증가가 예정돼 있어서다.
황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글로벌 ABS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 진입한다”며 “현재는 ABS를 수입해야 하는 중국이 순수출로 전환하게 되면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도 손익분기점(BEP) 수준까지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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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
“인플레이션으로 소비·투자 회복 지연”
“노후 설비 해제 소식도 아직 없어” “석유화학 산업은 공급 측면에서 업황이 고점에서 바닥으로 내려가기까지 가장 짧으면 1년 5개월 정도 걸려요. 작년 2분기 중반에 고점을 찍었으니, 올해 9월에서 연말 사이가 바닥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지금이 최악의 국면이라는 거죠. 문제는 바닥을 찍었다고 해도 거기서 V자로 반등할지, L자와 비슷한 완만한 회복에 그칠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한경 마켓PRO와의 인터뷰에서 경기민감업종 중에 가장 먼저 하락 사이클에 진입한 화학업종의 반등 시기를 묻는 질문에 “1980년 이후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인해 수요 회복이 늦어질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침체됐던 석유화학 업황이 호황 국면으로 돌아설 때는 △노후 설비의 해체(공급 감소)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수요 진작) △국제유가의 급락(물가 안정) 등 세 가지가 맞물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수요 부진, 중국 건설 경기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문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소재인 플라스틱을 만드는 석유화학산업 부진의 가장 큰 배경은 중국과 유럽의 수요 붕괴라고 변 연구원은 진단했다.우선 중국에서는 작년 현지 2위 부동산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의 파산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됐다. 건설 경기가 부진하면 건물의 배수관을 만드는 소재로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외장재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플라스틱 소재의 수요가 감소한다.
그나마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화학제품 수요 부진은 내년 봄이 되면 회복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황 연구원은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꺾이기 시작한 게 작년 2~3분기이고, 이제 1년 좀 넘게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불황에도 버틸 체력을 가진 업체들로의 업계 재편이 이뤄진 뒤 중국 부동산업계가 재편된 뒤 정부의 부양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소비와 기업의 투자를 함께 위축시키는 데다, 금방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물가 상승으로 인한 투자비 부담을 못 이기고 미국 애리조나에 지으려던 2차전지 공장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변 연구원은 “똑같은 규모의 공장을 짓는 데 드는 투자비가 작년과 비교해 50% 정도 올라갔다”며 이런 상황에선 설비 가동 이후 감가상각비와 같은 비용을 계산하면 투자를 늦추는 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요 위축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은 유럽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차질로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전기요금 가격이 10배 넘게 치솟았다. 변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 플라스틱 외장재가 들어가는 정보기술(IT)제품, 폴리에스터와 같은 화학섬유가 쓰이는 의류 소비가 위축된다”며 “가처분소득이 복원돼야 수요도 되살아날 수 있지만, 그 시기가 (중국의 부동산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내년 상반기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물가 상승의 양상이 ‘그레이트 인플레이션 시대’라고 불린 1970~1980년대와 비슷해서다.
당시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으로 물가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폴 볼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행보를 따라가겠다고 제롬 파월 현 Fed 의장은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황 연구원은 “1980년대에도 물가를 잡는 데 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가 석유화학 업황이 바닥을 친 뒤 가파르게 회복하는 V자 반등이 아닌, L자형의 완만한 회복을 점치는 이유다.
“노후 설비 해체 소식 없어…LG화학도 안심 못해”
공급 측면에서도 회복의 단초가 될 만한 노후 설비 해체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 황 연구원은“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노후화된 석유화학 설비는 일본에 있다”며 “1960년대 초반에 지어져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본의 석유화학 설비의 해체가 먼저 일어나야 공급이 조절된다”고 설명했다.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산업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노후 설비의 퇴장이 이뤄졌다. 황 연구원은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진 뒤 약 6개월 이후부터 글로벌 정유 설비의 3.5~4%의 해제가 발표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석유화학제품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이후 오히려 위생용품 등의 원료로 수요가 증가했고, 노후설비나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유럽의 에너지난에 따른 석유화학제품 생산 차질도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천연가스 부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유럽의 석유화학 설비에서의 제품 공급이 줄어드는 건 맞지만, 에너지 부족으로 플라스틱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공장의 가동도 멈추면서 수요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 국면에서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롯데케미칼과 대한유화이 지난 2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과 달리 이익을 남겨 선방한 LG화학도 내년부터는 LG화학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황 연구원은 분석했다. 주력 제품인 ABS(고부가합성수지)의 공급 증가가 예정돼 있어서다.
황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글로벌 ABS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물량이 시장에 진입한다”며 “현재는 ABS를 수입해야 하는 중국이 순수출로 전환하게 되면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도 손익분기점(BEP) 수준까지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한경 마켓PRO의 소식을 가장 빨리 접하고 싶으시다면 텔레그램을 구독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