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 전 참석 언론사 선정 통보…연합뉴스, 한국 언론 유일 현장 취재
소지품 기습 '압수 수색'에 일대 전파교란…질문은 사전 선정 언론사만
[특파원 시선] '3중 수색' 철통보안 이란 대통령 내외신 기자회견
대표적인 반미 국가로 꼽히는 이란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흔한 일이 아니며 외신 기자가 참석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보수 성향 성직자 출신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취임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회담이 상당 부분 진전을 이룬 가운데 이뤄져 관심을 끌었다.

이란 대통령의 기자회견 일정은 사전에 알려지지 않는다.

이란에서 대통령의 동선과 일정은 권력의 정점인 최고지도자의 위치와 함께 비밀로 취급된다.

대통령의 공개 일정 때는 일대 전파교란(재밍)이 이뤄지고, 일정 기간 항공기의 이착륙도 제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 보수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라이시 대통령은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파원 시선] '3중 수색' 철통보안 이란 대통령 내외신 기자회견
연합뉴스가 외신국으로부터 내외신 기자회견 관련 메시지를 받은 시점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약 15시간 전이었다.

기자회견은 당국이 선정한 언론사만 참여할 수 있었다.

별도의 참가 신청은 없었다.

선별 기준도 알려지지 않는다.

외신국의 통보에 따라 기자회견 장소인 테헤란 국제 콘퍼런스센터에 오전 7시에 도착했다.

그제야 어떤 언론사들이 선택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한 내외신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80% 이상은 이란 국내 취재진이었다.

이란 언론사 대부분은 국영 혹은 반관영으로 운영된다.

외신 기자들 대부분은 레바논, 이라크, 카타르 등 아랍권 매체였다.

로이터 통신, BBC 방송 등 영미권 주요 매체는 테헤란 주재 특파원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동양인인 한국·중국·일본 특파원은 눈에 확 띌 정도였다.

[특파원 시선] '3중 수색' 철통보안 이란 대통령 내외신 기자회견
일본의 경우 아사히신문 특파원이 선정됐다.

테헤란 주재 NHK, 교도통신, 요미우리신문 기자는 참여하지 못했다.

테헤란콘퍼런스센터 차량 출입문에서 1차 보안 검색이 이뤄졌다.

대통령실 경호원들은 휴대전화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공지가 없었다며 항변했지만, 꼼짝없이 반강제로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게다가 보안 직원들은 언론사 소속 현지 직원(통역)의 기자회견장 출입도 제한된다고 했다.

1차 검색이 끝나자 취재진을 승합차에 태우고 '특정 건물'로 향했다.

1㎞가량 차량을 통해 이동한 뒤 기자회견이 이뤄지는 건물 입구에서 2차 검색이 이뤄졌다.

엑스레이(X-ray), 금속탐지 장비를 이용한 검색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200㎡ 크기 방에 모든 취재 장비와 소지품을 두고 나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특파원 시선] '3중 수색' 철통보안 이란 대통령 내외신 기자회견
이후 넓은 콘퍼런스홀로 이동했고, 샌드위치와 따뜻한 차가 제공됐다.

이곳에서 취재진은 2시간 동안 대기했다.

소지품을 두고 온 방에 다시 가서 취재 장비를 찾을 수 있었다.

모든 가방과 장비는 누군가에 의해 샅샅이 검색된 후였다.

기자의 백팩에서는 비염 의약품과 손소독제가 사라졌다.

동행한 아사히신문 특파원은 노트북 겸용으로 가져온 태블릿PC가 없어졌다고 했다.

3차례의 검색을 마치고서야 실제 기자회견이 이뤄지는 300석 규모 홀로 이동했다.

취재진은 지정석에 앉아 대통령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10m 이내 근접 취재는 제한됐다.

외신 기자들에게는 영어 동시통역 기기가 제공됐다.

보통 노트북을 이용하는 한국의 취재환경과는 달리 이날 회견에 참석한 대부분의 기자는 수첩과 볼펜으로 대통령의 발언을 적었다.

검은 차도르는 입은 여성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도 다수 눈에 띄었다.

이란은 엄격한 이슬람 국가이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하다.

[특파원 시선] '3중 수색' 철통보안 이란 대통령 내외신 기자회견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모든 공식 행사에는 종교의식이 포함된다.

이날 기자회견도 쿠란(이슬람 경전) 낭독으로 시작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 혈통을 상징하는 전통 모자(터번)를 쓴 라이시 대통령은 취재진에 손을 들어 인사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1시간가량 이어졌다.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문은 사전에 선정된 언론사에 한해 허용됐다.

선정된 기자는 순서대로 무대 측면에 위치한 별도 단상에 나아가서 질문했다.

핵협상, 인플레이션, 주택 공급 문제, 주변국 외교 등 다양한 분야 질문이 나왔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이란 내 미신고 장소에서 검출된 핵물질과 관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가 철회돼야 핵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압수' 당한 소지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서방 언론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국가에서 이 정도의 취재 지원은 만족스럽다고 할 만했다.

흔치 않은 동양인 기자의 출현에 회견에 참석했던 많은 현지 언론인이 관심을 보였다.

일부는 인터뷰를 요청하기까지 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특파원 시선] '3중 수색' 철통보안 이란 대통령 내외신 기자회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