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 개막 앞두고 경기 급랭·민생 악화 큰 정치적 부담
[시진핑 3기 유력] ② 공동부유·기술자립 가치 전면 등장하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할 것으로 보이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하 당대회)에서는 '공동부유'(共同富裕)와 '쌍순환 전략'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 시대를 맞아 내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쌍순환 전략과 각종 불평등을 줄이는 공동부유 등 이른바 시진핑 경제사상과 함께 미국의 공급망 재편 구상에 맞선 과학기술 자립 등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다시 고개 드는 시진핑표 '공동부유'
전문가들은 한동안 사라졌던 공동부유가 다시 국정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최고 정책결정 기구인 정치국 회의는 20차 당대회의 주요 의제로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를 내실 있게 추진', '적극적으로 인류운명공동체 건설 추동','중화민족 위대한 부흥 전면 추진' 등이 다뤄질 것이라고 30일 예고했다.

공동부유는 지난해 8월 시 주석이 주재한 중국공산당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통해 전면에 등장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심각한 빈부격차가 공산당의 장기 집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채택한 제3차 역사결의(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의)에 공동부유라는 단어를 5번이나 언급하며 핵심 정책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일부가 먼저 부자가 돼라'는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웠다면 시 주석은 사회주의 본연의 가치인 평등을 주창하고 나선 것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가구 부의 6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3기 유력] ② 공동부유·기술자립 가치 전면 등장하나
또 2020년 전 세계 신흥 억만장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왔지만, 리커창 총리는 인구 14억명 가운데 6억명의 월수입이 1천 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초강력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도시 봉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경제 둔화, 부동산 시장 위축 등 지난해 말부터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공동부유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중국은 지난해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기점으로 경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공동부유의 속도를 조절하는 노선 전환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 총리가 공개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공동부유는 단 한 차례 언급되는 데 그쳤고, 관영 매체에서도 공동부유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당 대회를 통해 공동부유가 국정과제의 전면에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물론 세계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미·중 전략경쟁, 코로나19, 가뭄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 5.5%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단기적으로 자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공동부유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기는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신중국 성립 100년이 되는 2049년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시 주석이 '사회주의 본연의 가치' 추구 차원에서 공동부유라는 핵심 경제정책을 내려놓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시 주석이 최근 중국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를 통해 공동부유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잇달아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5월과 8월 치우스에 실은 기고에서 "공동부유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요구"라거나 "공동부유는 그 자체가 사회주의 현대화의 중요한 목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반도체 굴기'를 포함한 기술 자립 움직임도 당대회를 계기로 전열을 가다듬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3기 유력] ② 공동부유·기술자립 가치 전면 등장하나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신·증설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모두 2천800억 달러(약 375조원)의 재정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반도체 지원법과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등은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가 주도 반도체 육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기업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2024년 17%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 주석이 지방 방문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반도체나 로봇 관련 기업이라는 점도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 주석은 지난 6월 허베이성 우한의 한 태양광 장비 제조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독립적인 지식재산권으로 더 많은 핵심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며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했다.

◇ 시진핑 장기집권 가도에 부담된 경제 불안
장기 집권 시대 개막을 앞둔 시 주석에게 민생과 직결되는 경제 안정화는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대한 도전 중 하나다.

그가 덩샤오핑의 유산인 집단지도 체제 시대를 종결하고 오랫동안 금기시된 1인 절대 권력의 봉인을 푼 만큼 민생 악화로 고조된 불만이 과거와 달리 고스란히 1인자를 향해 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당대회를 앞둔 중국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국민 생명과 경제 안정을 지켜내는 발판이라며 대내외 자랑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올해 상하이 봉쇄 사태를 계기로 자국 경제를 짓누르는 최대 부담 요인으로 전락했다.

상하이 봉쇄의 충격파로 성장률은 1분기 4.8%에서 2분기 0.4%까지 급락했다.

중국 당국이 올해 목표한 5.5% 성장 달성이 힘들어졌다.

여러 세계 주요 기관은 올해 성장률이 3%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공산당도 이미 국민들의 기대 눈높이 낮추기에 들어간 상태다.

공산당 중추 기구인 정치국은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논의한 지난 7월 말 회의에서 5.5% 성장 목표를 언급하는 대신 '가장 좋은 결과를 쟁취하겠다'는 표현을 들고나왔다.

성장률 목표는 포기하더라도 심각한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양대 목표를 지켜내는 수세적 전략으로 선회한 모습이다.

"고용이 상대적으로 충분하고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물가가 안정적이라면 성장률이 다소 높거나 낮아도 용납할 수 있다"는 리커창 총리의 지난 7월 세계경제포럼(WEF) 주최 행사 발언은 중국의 '경제 방어선'이 크게 후퇴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진핑 3기 유력] ② 공동부유·기술자립 가치 전면 등장하나
경기 부양의 필요성은 커졌지만 정책 운신의 폭은 크지 않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경기 급랭에 대응해 이미 작년 말부터 반년 가까이 정책 금리와 지급준비율을 잇따라 인하하는 등 미국 연준의 긴축 기조와 반대로 가면서 정책 여력을 거의 소진했다는 평가가 많다.

재정 측면에서는 제로 코로나 유지를 위해 엄청난 재원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인프라 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채권 발행을 감수할 태세이지만 재정 부담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당대회를 계기로 자국 경제를 짓누르는 중대 요인인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의미한 수준에서 전향적으로 조정할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중국 현지의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중국이 당대회 개최를 위한 안정적 여건 조성을 위해 내부적으로 무리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펴온 측면이 있는 만큼 이번 행사 이후로 중국이 몸을 돌릴 여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